맑은 얼음을 마시고 청고淸苦한 생활을 추구하는 나무
황벽나무, 씨앗으로 가꾸어 찻상을 만들다
황벽나무 찻상 풍경, 기어코 황벽나무 찻상을 만들어 늘어놓는다. 내가 만든 서툴고 거친 찻상은 어머님 기일에 모인 가족들이 가지고 싶어 해 흔쾌히 나누어 주었다. 좀 더 손질하면 예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제재소에서 두 번 켜고, 켜켜 쌓아 말린 후 몇 달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내 손보다야 훨씬 나은 장인의 손을 빌린 것은 그나마 두께가 어느 정도 소용되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로 소용되는 나무는 10여 개 정도였다. 이들은 목공소 맛을 보고 돌아왔다.
땅을 돌려달라고 하여 벌채할 수밖에 없었던 나무
오대산에서 채종한 황벽나무 씨앗을 파종하고, 땅을 얻어 묘목을 길렀다. 그리고 옮겨 심어 가꾸었다. 그러다 땅을 내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벌목하였다. 뭔가 의미있는 소용이 될 수 있게끔 궁리하였다. 알아보니 목공소에서는 기계 대패를 사용할 수 있는 두께여야만 켜 줄 수 있다고 한다. 몇 군데 오가며 알아보다 아는 사람을 통하여 여주 이포에 있는 목재소를 만났다. 겨우 사정을 해서 켠 나무를 켜켜이 쌓아 두었다가 수원의 개인 목공소에 맡기는데 6개월이 넘게 소요되었다.
얇아서 목공소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들은 챙겨서 가져왔다. 이제 내 손으로 작은 찻상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정성을 지녀야 한다. 몇 가지 목공 기구와 기계를 갖췄다. 조금씩 시간을 쪼개 만들었다.
황벽나무 판목을 겉대어 앉은뱅이 책상에 붙이다
그러다가 여러 개를 펼쳐 앉은뱅이 책상을 만들기로 하였다. 황벽나무만으로는 곤란하여 안감으로 다른 나무를 대고 겉감으로 황벽나무를 입히는 형식을 생각해냈다. 그렇게 서랍까지 넣어서 만들어진 황벽나무 책상은 차도구를 올려 놓는 찻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황벽나무라는 이름만 들어도 괜히 호사하는 것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입이 벙글어진다. 호사취미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1987년 가을, 오대산에서 종자를 채취하여 파종하여 얻어낸 목재니 작은 찻상과 앉은뱅이 책상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다. 20년만에 벌채하여 뭔가를 만들어 곁에 둔 기분은 함께 채종에 나섰던 몇 사람은 알 것이다.
오래전부터 재배된 황벽나무의 가치에 관심을 집중하다
처음에는 자생수목으로서의 가치를 높이 사서 재배하기 시작한 나무이다. 사실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등의 알에서 생긴 애벌레 먹거리로서 황벽나무의 잎은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황벽나무는 자신의 일부를 나눠주고, 애벌레는 여기에 고치를 짓는다. 한달 정도 이 과정을 거쳐 변신에 성공하면 나중에 고치에서 우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나고 낳고 쉼이 없는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순환이다. 황벽나무의 열매 또한 새들에게 귀중한 것이다. 유난히 벌레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 있는 것들이 깃들어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궁궐 후원의 약용식물이면서 인격 수양의 빙벽
조선시대 궁궐 뒤쪽 후원은 휴식공간이면서 과수원이었고 양잠원이면서 약용식물원이었다. 실용적인 구성이다. 약용을 목적으로 심은 것이 엄나무와 황벽나무 따위다. 황벽나무의 속껍질을 약용과 염료용으로 오래전부터 재배하였다. 황벽나무의 줄기의 속껍질을 황벽 또는 황백이라 한다. 연한 황색을 띠고 있으나 건조를 하면 노란빛이 많이 첨가된다. 국산이 노란 빛이 강한 반면에 중국산은 껍질이 두꺼운 편이며, 전체적으로는 노란 빛이나 붉은 색을 함유하고 있어서 색깔에 차이가 있다.
『목은집』에는 '빙벽氷蘗'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차가운 얼음을 마시고 매우 쓴 황벽나무를 먹는다'는 뜻이다
대단히 맑게 살고자 하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채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목은시고 제2권』에는
"얼음보다 맑고 황벽보다 쓰디쓴 생활壺氷讓淸蘗讓苦"
이라는 싯구가 있다
이것은 빙벽을 아예 풀어 쓴 싯구이다
사람의 청고淸苦한 생활을
‘맑은 얼음을 마시고 쓰디쓴 황벽나무를 먹는다.’
고 표현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
황벽나무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이다. 심어 놓았던 밭을 비워주어야 하는 입장에서 제 스스로 그 밭에서 자란 황벽나무를 베어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씨앗을 채취하여 여태까지 기른 내 자신에게도 성의를 다한 셈이고, 황벽나무의 위대한 보시에도 최선을 다해 예의를 갖춘 셈이다. 평생을 곁에 두고 차를 마실 때마다 마주할 이 아름다운 인연을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찻상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싫증이 난다고 하여 내칠 방안 또한 있을 수 없는 그런 찻상으로 내 앞에 놓였다.
황벽나무 작은 찻상에 찻물로 그림을 그리다
오래도록 찻물이 들어 울긋불긋 그 안에서 또 찻물 든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을 상상해 본다. 일부러 찻물이 흐르면 찻잔 바닥으로 이리 저리 긁어 주면서 전체적으로 곱게 찻물이 황벽나무 찻상에 물들게 하여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흐르는 흔적대로 제 멋대로 찻물이 들어, 그 보기 싫을 수 있는 무늬에서 꽃도 보고 열매도 보고 살아 있을 때의 황벽나무를 찾았던 나비도 보고 새의 그림자도 볼 수 있기를 끝내 희망하고 만다. 검은색으로 익는 둥근 열매는 겨울 내내 달려 있어 새들의 먹이로 훌륭한 역할을 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황벽나무와 질긴 인연으로 얽혀 있다. 어쩌면 황벽나무가 나를 끌어 당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황벽나무는 찻상으로 만들어져 평생 지기로 함께 살아 갈 것임에는 틀림없다. 가장 멋진 친구로 거듭 태어난 내 친구 황벽나무를 한번 더 쳐다본다. 서로 다정하게 눈인사를 나눈다. 오늘 새벽에도 뜨거운 차를 우려 따뜻한 체온을 나눈 셈이다.
황벽나무는 밀원식물로 매우 훌륭한 나무이다
양봉을 하는 사람들은 밀원식물을 심기는 하는건가. 내가 심어 놓은 밀원 좋은 나무가 있을 때, 양봉을 하는 기본 자세가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 남이 심은 나무의 밀원만 쫓아 다니는 양봉은 계면쩍은 일일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하는 걸까. 벌을 이용하여 꿀을 생산하는 것 자체도 손떨리는 일인데, 밀원식물이 되는 나무를 이 국토 어딘가에는 마구 심어 놓아야 양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황벽나무의 잎표면은 진한 녹색으로 광택이 있으나 가을 단풍은 노란색으로 볼 만하다. 초여름 꽃은 황록색으로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나 밀원식물로 벌과 나비와 곤충에게 유용하다.
줄기는 곧게 자라고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 옅은 그늘을 만든다. 수피에 두꺼운 코르크층이 발달해서 세로로 굵고 깊게 갈라진다. 품질이 좋다. 토심이 깊은 곳에서 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