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근 씨의 협착소설.0003
형근 씨는 덕지덕지 붙인 파스보다 효과가 좋다는 무언가를 감각에 의존해 왼쪽 허리 통증 부위에 더듬더듬 붙였다. 까짓거, 안 아프면 그만이다. 보이지 않는 등 뒤라 겹치고 빠진 곳 투성이겠지만 모양새 따위가 대수랴. 예전에는 등 가려우면 긁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파스 붙여 줄 사람이 절실하다. 이럴 땐 차라리 로봇이라도 하나 굴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 뭐 하나.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신호가 왔다. 주저앉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어제 쉬었던 위치까지는 가보자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기자. 이겨!'
속으로 구호를 외치면서도, 동시에
'그냥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나약함이 고개를 든다. 형근 씨는 이기는 것과 포기하는 것, 그 아슬아슬한 줄 위를 매일 위태롭게 걷는다. 통증은 승리도 포기 섞인 패배도 허락하지 않는, 지독하고 끝이 없는 협상 파트너였다.
세상 좋은 말은 다 끌어다 붙인 아파트 단지를 지나 교습소 앞에 이르러서야 타다체어를 펼쳤다. 지나자마자 잽싸게 의자를 펴는 동작은 요 며칠 사이 생존을 위해 연마한 형근 씨만의 기예에 가까웠다.
고개를 들어 앞으로 넘어야 할 동그란 산을 바라보았다. 백 년 전, 이곳은 밭과 논뿐이었고 지도에 이름이 박힌 곳이라곤 오로지 '청련암' 하나였다. 형근 씨는 그 유일한 이름을 향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기억된다는 것, 기억된다는 것은 곧 존재한다는 증거다. 형근 씨도, 손에 쥔 타다체어도, 저 멀리 청련암도 이름을 가진 순간 사라지지 않으리라.
처음엔 100미터도 못 가서 통증이 왔지만, 두 번째인 지금은 700미터를 걷고 나서야 의자를 폈다.
'분당서울대 척추센터 닥터 P 앞에서는 내가 너무 점잖았나.'
막상 진료실 의자에 앉으면 통증을 끄집어내 호소하기보다 점잔을 빼게 된다. 의사라는 권위 앞에서는 왜 통증조차 겸손해지는가. 하지만 통증은 겸손할 필요가 없다. 아픔을 숨기는 건 미덕이 아니라 내 몸에 대한 거짓 증언이다. 오늘은 계속 전화를 걸어 빈자리 예약을 기필코 따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만나면, 이 지긋지긋한 증세를 아주 선명하게 묘사하리라.
'아니, 대사를 프린트해서 외워가는 게 낫겠어.'
통증을 외워야 한다니, 아이러니했다. 이미 몸이 비명을 지르며 대사를 쓰고 있는데 말이다.
형근 씨는 산에 오르며 윗옷 지퍼를 내렸다. 평소라면 벗어서 왼손에 끼고 갔겠지만, 아직은 섣부르다. 땀이 식으니 한기가 돌았다. 조금 더 올라 원로분지에 다다르자 다시 한계가 밀려왔다. 한참을 지팡이에 체중을 싣다가, 900미터 지점 안내 바위 앞에서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협착소설'이란 타다체어에 앉을 때마다 이어 쓰는 글이라, 문장이 길어질수록 체온은 떨어진다. 옷을 여밀까 하다가 그냥 일어서기로 했다.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걷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글은 기록이지만, 걸음은 삶 그 자체니까.
다시 400미터를 걷고 의자를 펼쳤다. 이번에는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모자를 꺼내 푹 눌러쓰고 파카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아까처럼 버티다가는 콧물이나 훌쩍거리는 신세가 될 게 뻔했다.
아침에 수진이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형근 씨! 어제 그 아이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대충 다섯 살 아래였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문득 지은의 얼굴이 스윽 겹쳐졌다. 태석같은 기질은 절대 봄과 여름에게 먹히지 않을 텐데. 성질 급한 지은에 비해 태석은 동작이 느리니 말이다. 형근 씨가 보기에, 지은은 자칫하면 봄과 여름에게 잠식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 성질 그대로 화끈거리는 파스 같은 이들은 후회할 틈도 없이 앞서 나가버리니까. 벌써 봄의 치밀한 설계와 여름의 깊고 그윽한 생각이 지은을 어떻게 요리할지 다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은의 시모도 가끔 톡톡 건드리며 자극하는 걸 보면, 기질이 참 다른 형국이다. 가족이란 이토록 서로 다른 기질들의 충돌이자 조화다. 급한 자와 느린 자, 설계하는 자와 사색하는 자. 그 모든 차이가 얽혀 가족이라는 생태계를 이룬다. 형근 씨는 모자를 쓰고 파카를 올린 채 이 생각을 갈무리한 자신이 대견했다. 타다를 접고, 다시 협착과의 동행을 시작했다.
형근 씨는 교통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명당을 찾아 몇 번이고 타다체어를 펼쳤다. 다시 600미터를 지났다.
'이제부터는 구간 거리가 아니라 총 거리로 계산해야겠어.'
이전 거리 수치를 떠올리려니 머릿속이 캄캄했다. 오늘은 동인지에 보낼 시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2.6km에서 3.0km 사이, 겨우 400미터를 걷고 다시 허물어지듯 앉았다. 놀라운 일이다. 나이 든 문인들의 근황이 다들 그렇다지 않나. 휠체어, 요양원, 피골이 상접한 모습들. 그런데 그들이 형근 씨가 쓰는 정원문화 연재를 좋아한단다. 어디서 이런 좋은 글을 가져왔냐고 묻는단다. 눈 밝은 이들은 알아본다. 비록 질투심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을지라도, 형근 씨는 언젠가 자신의 작업이 정당한 평가를 받으리라 확신한다. 버스 정류장 벤치는 형근 씨 같은 협착인에게는 호텔 로비나 다름없다. 연구소로 향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앉아야 할까.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계산은 그만두자. 필요한 만큼, 앉아야 하는 만큼 앉으면 그뿐이다.
다시 3.4km 지점, 400미터를 더 걸어 건널목에 섰다. 파란불에 건너려는데 트럭 한 대가 휙 지나가며 앞서 가던 아주머니를 칠 뻔했다. 아주머니도, 트럭 기사도, 그리고 지켜보던 형근 씨도 동시에 얼어붙었다. 사고는 찰나에 일어나고 놀람도 순식간에 흩어진다. 하지만 그 짧은 긴장은 몸에 깊은 주름처럼 새겨진다. 형근 씨는 무의식적으로 타다체어 손잡이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오늘도 무사히.'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