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라는 족쇄

형근 씨의 협착소설.0012

by 온형근

술이 빚은 일이었다.


분명 술이 빚은 일이었다. 그 사실을 형근 씨는 귀가 길 내내 되뇌었다. 영하의 공기가 귓불을 때리는데, 귓불보다 먼저 얼어버린 건 술기운이 빠진 자리마다 돋아난 소름이었다.


동강 맑은 송어집. 붉고 탱탱한 송어 살이 접시에 쌓였고 소맥이 돌았다. 민간단체 대표가 잔을 채우며 슬쩍 몸을 굽혔다. 낮아진 목소리는 언제나 중요한 것의 전조다. 형근 씨는 그걸 안다. 알면서도 귀가 열렸다.


“형근 씨, △△회관 2층 알지? 거기 월 60에 보증금 500이야. 우리 연구소랑 반반 쓰자고. 그리고…”


대표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조직 개편하면서 형근 씨 자리를 하나 비워뒀어. 이름만 걸어두면 돼. 외부 활동할 때 ‘감투’ 하나 있어야 힘이 실리지 않겠어?”


어느 순간 서류와 펜이 형근 씨 앞에 놓였다. 어떻게? 알 수 없다. 그냥 거기 있었다.


“에이, 서명만 하세요. 우리가 다 알아서 모실게.”

옆에 있던 ○○ 사장이 거들며 펜을 쥐여주었다.


“아, 예… 뭐… 그럼…”


서명을 휘갈겼다. 일사천리였다. ○○ 사장의 웃음소리가 천장에 부딪혔고, 형근 씨는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집에 오는 밤길. 한 꺼풀, 또 한 꺼풀 술이 걷혔다. 그러자 단전 깊은 데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미지근한 후회가 아니었다. 뜨겁고 사나운 자책이었다. 형근 씨는 가로등 아래 멈춰 섰다.


감투.


그 앞에서 조아리는 억지웃음 짓기. 형근 씨가 평생 가장 경멸한 것이 무엇이었나. 조직의 장이든 관리자든, 인간미 결여된 자가 권세를 흔들면 기어이 들이받아 그 바닥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다소곳하지 않으려고, 내 허리를 세우려고 조원동 원림에 틀어박힌 거 아니었나?”


타다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형근 씨는 비명처럼 아내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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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경가 ■시집 : 천년의 숲에 서 있었네 외 5권 ■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 ■월간 조경헤리티지 ■조경수목 문화콘텐츠(2019) ■시경으로 본 한국정원문화(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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