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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Feb 26. 2017

큰 맛과 귀한 만남

식은 차에서 풍미를 이루다

식은 차를 보온병에서 따른다. 24시간이 지났다는 말이다. 보온의 하루를 외면하였겠다. 황차의 풍미가 입안을 씻어낸다. 추사는 말년에 인생의 가장 큰 깨달음의 달관을 주련에 담았다.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

부러움 없이 큰 탈 없이 살던 추사가 겪었을 곡진한 삶과 영광과 과오와 빛나던 업적에 어울리지 않을 촌스럽기도 한 말이 자꾸 되살아난다.


고기를 즐기며 산해진미를 아는 사람이, 고관대작을 지나 동북아의 내로라는 학자까지 교류했던 사람이어야 가능한 깨달음이고 추사였기에 값진 말이다. 식은 황차 한 잔이 하루를 준비하며 정좌하여 차를 우리던 시간에 주파수를 넘긴다. 두부, 오이, 생강, 나물같은 찬이 가장 훌륭한 차림이라는 말이다. 집에서 먹는 소소한 찬에 둘러 앉은 그림이다. 가장 멋지고 의미있으며 귀한 만남의 자리는 부처아손, 즉 부부와 아들 딸, 손주들이라는 말이다. 소박한 만남이 귀하다. 귀양과 교유와 필화와 질시와 잘남이 한데 어우러졌던 추사의 말년은 그래서 안타까우면서 빛난다. 빛났던 시절이 있었기에 소박한 집밥과 손주들이 아름다워진다.


식은 황차는 뜨거움으로 가렸던 깊은 풍미를 오롯이 드러낸다. 나 이거밖에 없다고 턴다. 안개도 없고 그늘도 없다. 있는 그대로다. 방학 중 연수에 나같이 나이 든 사람은 생물로 치지 않더라. 보채고 조르는 행태와 일찌감치 연을 끊은 탓도 있다. 이제와 달라지거나 바뀔 일은 아니다. 식었으나 아직 깊은 풍미를 지녔다. 그대로 벗고 살 참이다. 감추고 치장하며, 있어 보이는 체, 포장하지 않으면 된다. 최고의 맛은 소소한 찬이고 가장 귀한 만남과 인연은 지금 이 자리이다. 천천히 내 방식으로 짚어내고 이룬다. 방식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유로서 내딛고 옳거니 싶으면 무릎을 친다. 추사도 그러했을테다. 굴곡지고 화려한 빛살이 있었기에 이면을 읽어 낼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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