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형근 Aug 21. 2017

녹차의 마음

모정의 세월은 믿고 기다려주는 것

오랜만에 녹차에 이끌린다. 쉬는 날, 온전하게 놀아보려 했으나 월요일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럴 때 녹차를 찾는다. 녹차에게 마음이 있을까마는, 오늘은 녹차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뜨거웠던 물의 온도를 낮추고 물끓는 소리와 번잡한 물방울을 가라앉힌다. 가만히 기다린다. 녹차의 향과 맛은 그대로다. 비릿하면서도 아리다. 현묘하다는 말과 쉽게 통한다. 기다리는 동안 변함없는 녹차의 현묘함에 사로잡혀 있다. 신뢰한다는 것, 믿는다는 것과 통한다. 어쩌면 녹차의 마음은 어미의 마음과 같다. 기다리고 믿는 것, 그런 기대와 신뢰의 심정을 녹차에게서 발견한다. 과정에서 튕겨나오고 소멸되거나 외면되는 일들의 자잘함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음이다. 한결같이 쥐고 있어서 좌지우지 할 생각 없음이다. 놓친다는 것은 관점을 흐트러뜨린다는 게 아니라, 만들어 놓지 않는다는 게다. 그럴수록 집착의 가지수가 줄어든다. 역지사지와 눈높이도 스스로를 위무하기 위함일 뿐이다. 자칫 만연되는 체념으로 번질 수 있다. 기다리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무작정 믿는 것이 되어야 한다. 어미의 마음에 이르러야 한다. 남앞에 선다는 것이 그렇다. 그게 녹차의 비릿하고 아린 현묘한 맛과 서로 통한다. 녹차를 만난다는 것은 녹차에 대한 믿음이고, 녹차를 우리는 모든 과정은 믿음에 대한 기다림이다. 어긋나지 않음을 알기에 벗어나지 않는 맛으로 다가올 게 분명하기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치 세월처럼 작용한다. 세월 역시 그렇게 굴러간다. 뚜렷하고 분명한 게 세월인지라 따를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즐링으로 여는 오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