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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Oct 09. 2017

일상의 사소함

둘러보아야 할 소소한 일거리

연휴 동안 떨어진 고욤나무 열매를 주웠다. 내친김에 말채나무 열매도 비로 쓸어 모았다. 노천매장 후 내년에 파종할 참이다. 말채나무야 밟혀도 발바닥에 느낌이 덜 하지만, 고욤나무는 발바닥에 달라붙으면서 끈적거림이 뒤따른다. 해서 줍기도 쓸기도 성가시다. 도와주던 애제자가 말한다.

'밟지 않고 피해서 지나가지'

관심 속에서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하나의 일상과 행위는 이어지는 일체의 과정에 관여하게 된다. 채집과 정선, 탈각, 발아촉진을 위한 노천매장, 파종에 이르기까지의 첫 단추를 맨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일거리에서 전문가의 식견을  두루 갖추는 소소함이야말로 쉽지 않은 터득이다. 다시 일상의 엄중함으로 든다. 내일은 돌배나무 열매도 거둬야 한다. 누군가는 생산의 숭고한 대열에 서야 한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생명을 재탄생시키는 생산을 위한 궁리에서 비롯된다. 연휴 와중에도 수시로 온실과 정원을 들락거린 이유다. 한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황차를 우려 깊은 발효가 주는 각성에 기댄다. 무릎과 허리의 통증을 높은 방석으로 곧추세운 채 좌식의 차생활과 직면하는 이유다. 등 뒤로 송송 솟아나는 생각의 편린이 골을 타고 내린다. 나는 황차를 우렸을 뿐, 식지 않는 따뜻함은 차의 기운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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