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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Oct 30. 2017

김해 정호요 임만재

찻주전자를 茶壺라 하고 養壺양호는 기르고 보호한다

내가 차도구를 들먹이는 일은 없었다. 그야말로 실용의 덕에 기댔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진주 다솔사 동초스님의 녹차를 우렸다. 나는 녹차와 자주 즐기는 황차, 보이차를 서로 다른 찻주전자에 우리는데, 녹차를 위해 차호를 집으니 그동안 정을 주지 않았는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첫차를 우리고 오랜만에 뜨거워진 차호를 쥐고 양호에 든다.


차호는 금방 따뜻함의 임계를 넘어서 쥐고 있던 손을 바꿔가며 쥐어야 했다. 얇은 면 차건으로 비비며 닦아주었다. 금방 환해지며 반짝거린다. 차호의 피부에 윤기가 돈다. 이를 養壺라 부른다. 가끔 실용에서도 여유를 흘리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결국 실용의 입지를 강화하는 일이 된다. 몇 개 없지만 김해 정호요의 임만재 차호를 아낀다. 직접 공방에서 말차를 내어주던 그의 집중과 선한 성심을 여전히 존중한다. 특히 이 차호의 색상이 녹차에 잘 어울려 대단히 만족한다.


뭐 간단했다. 우둔하여 녹차, 황차, 보이차의 차호를 정할 때 차의 탕색과 차호의 색감을 근사치로 한 것 뿐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헷갈리지 않고 차에 맞춰 차호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근사치를 찾았더니 차 생활이 근사해진 셈이다. 그러니 오늘 아침 녹차는 동초스님과 소남 임만재, 그리고 다솔사와 김해 정호요와 힘께 한 것이다. 대상과 공간이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 우림과 양호의 과정으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오랜만에 양호된 임만재 차호와 녹차를 흐믓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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