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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Apr 15. 2022

마크 로스코

그의 죽음의 이유를 따라가다가 읽은 책

마크 로스코(Mark Rothko) : 슬픔과 절망의 세상을 숭고한 추상으로 물들이다[양장]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알게 된 건 7년 전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였다.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그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빨간색으로 가득 채워진 커다란 정사각형 그림이었다. 나는 메인 작품인 RED보다 다른 작품을 보고 내 안의 깊은 우울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짙은 파란색과 빨간색이 세로로 구성된 그 안을 들여다볼수록 계속 끝없는 방이 떠올랐다. 멍하니 15분은 족히 그 자리에 서서 그 그림을 바라봤었다. 그로부터 6년 뒤, 서점에서 이 책을 마주쳤다. 전시회에서 느꼈던 음울한 작가의 일생과 그것이 담긴 작품들이 떠오르면서 왜 자살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자연스럽게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책을 산 이유는 분명했다. 작품이 실려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냥 이 작가가 선택한 죽음이 궁금했다. (너무나 비싼 가격에 작품을 살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보통 작품이 실린 도록을 산다)

예술의 전당 전시 중 Red


집에 돌아와 읽으려 하니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았다. 죽음의 원인이 궁금했지만 막상 책장을 펼쳐기가 두려워졌었다. 이렇게 성공한 예술가도 스스로 생을 끝내는데 죽음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갖고 깊게 파고드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책장에 넣어둔 채로 2년이 흘렀고,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많은 난민이 생기면서 러시아의 박해를 받은 유대인 출신인 로스코가 다시금 떠오르게 되었다. 몇 년간 책장에 썩히고 있으니 죄책감이 들어서 였을까? 때마침 회사에서 소수 인원으로 진행하는 모임에서 하고 있는 아침형 인간 활동(아침에 1시간 일찍 일어나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는 모임) 중에 나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로 하였고, 주문한 책 배송이 늦게 오게 되어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예술가의 마지막이 결국 자기가 선택한 ‘죽음’이라는 것이 궁금해서 이 책을 샀건만, 책은 그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옮겨놓은 300페이지 남짓한 활자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마지막을 추려볼 수 있겠지 싶어 인터넷 서치를 꾹 꾹 참으며 읽어 내려갔다. 첫 단락은 그의 어린 시절 부터 시작된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는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 포틀랜드로 정착하면서 이민자 가정으로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유대인 특유의 가정 교육과 방대한 독서량?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머리가 좋았던건지 그는 예일대라는 미국 명문대에 입학했다. 서방 최고점의 상류층만 모이는 그 속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사람이었음을, 그의 일생을 나열한 줄글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유럽의 예술이 흥행하던 시절, 미국인이 아니었음에도 뾰족하게 자신만의 생각을 갈고닦아 예술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니 현대 미술계의 진정한 낭중지추였던 인물이다. 

초기 작품들
후기 작품들


예술은 비극 속에서 태어난다. 요즘 들어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에서 자행되는 전쟁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난민으로, 이민자로서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라는 추측을 감히 해보고 있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그 문화에 속하려 노력한 작가의 고군분투를 이 책에서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작가의 그림에는 그런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그림으로 종교적인 체험을 대신하는 듯해 보인다. 초반의 작품을 보면 추상화이고 두루뭉술하지만 형체도 있고 뭔가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말미에 갈수록 형체는 없어지고 그림은 점점 커지고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어떤 넓고 깊은 색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은 물리적으로 평면이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는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답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떤 방은 따듯하고 봄 같다면 또 어떤 방은 차갑고 깊고 우울하다. 그림으로 이렇게 다채로운 공간으로 떠날 수 있다는 건 내 집 하나 갖기 어려운 각박한 세상? 에 조금 위로가 되는 듯도 하다. 


시그램 빌딩 포시즌스 레스토랑

로스코가 두각을 드러내게 된 큰 이유는 '미국 미술의 부흥’도 한몫한다. 이 시기에 미국에는 많은 갤러리들(구겐하임, 휘트니, MOMA 등)이 생겨났고, 전시를 성공시키기 위해 유망한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큐레이터들이 활발하게 미국 예술계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미국 예술계는 이 유대인을 주목했지만 그런 그에게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일례로 로스코는 뉴욕에 세워질 시그램 빌딩(강남 한복판에 제일 비싼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의 1층 포시즌스 레스토랑에 걸 벽화를 의뢰받았다. 40여 점의 그림을 그렸으나 그는 그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환멸을 느낀 것 같다. 자본주의에 찌든 부유층이 사치스럽게 음식을 먹는 곳에 하나의 장식품처럼 자신의 그림이 걸리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종교적인 시선을 담았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그 따위 음식을 그 돈 주고 사 먹는 인간들은 절대 내 그림을 볼 일이 없을 거야”

“나는 그 방에서 식사를 할 모든 개자식들의 식욕을 망쳐놓을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네. 레스토랑이 내 벽화를 걸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최고의 찬사일 걸세.”


시그램 빌딩 프로젝트를 위해 그렸던 그림들을 보면 확실히 그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인테리어 안에 잿빛의 커다란 그림들이 벽면을 장식했다고 상상하니, 고급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냄새가 아닌 푸르스름한 상한 식빵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시그램 빌딩 프로젝트를 위해 그렸던 벽화들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대중에게 인정받았을 때 더욱 가치를 얻는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고 숫자가 올라갈수록 작가의 위상은 높아진다. 어쩌면 예술가의 작품에 돈으로 숫자를 매긴다는 것은 이상한 시스템이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지 누가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술품이라는 건 예로부터 사치품이었지만, 자본주의가 생기기 이전에는 귀족들이나 왕가에서 자신들의 자화상을 그린다던가, 종교의 일부 장면을 그려 성당의 유리에 장식한다던가 하는 기록에 더 가까운 쪽에 속했다면, 현대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거실의 장식품으로, 탈세로 혹은 재테크로 이어져 온 자본주의 문화처럼 여겨지고 있다. 로스코는 시그램 프로젝트와 같이 자본주의 속에서 자신의 그림이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 한 건물을 사서 자신만의 채플을 만드는 것을 계획했다. 물론 이런 계획을 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작품을 팔거나 전시회를 열어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나도 1만 2천 원의 전시회 티켓값을 지불하고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으니 서로 윈-윈- 아니었을까?


휴스턴 로스코 예배당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의 본질적인 목표에 대한 질문을 이어왔다. 어디에서 전시하며, 어떤 방식으로 설치할 것이며, 관람객은 어디에 서게 할 것인지, 조명은 어떻게 비출 것인지? 누구를 위해 그리는가? 미적인 체험이란 무엇인가? 등 자신의 그림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해 탐구했다. 그것으로 그는 도시에서는 완전히 동떨어진 렐란트 예배당의 폐허를 선택했고, 미국의 소비주의적 악습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만의 로스코 예배당을 완성하고 나서 심장병을 진단받았으나 담배와 술을 즐겼으며 그림을 그리기엔 어려울 정도로 점점 상태가 좋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알았기 때문에 그는 생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휴스턴 예배당에 걸린 Grey 시리즈는 한국의 전시회에서도 비슷한 구성과 연출로 한 공간에 전시되었었다. 그 공간에는 회색 방석이 여러 개 있었고 전시회를 관람했던 사람들은 마치 로스코의 자살을 추모하듯 끝이 안 보이는 옅은 회색 그림들을 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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