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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Sep 17. 2022

오스트리아로 리프레쉬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좀 하다 올게요

오후 2시쯤, 점심을 먹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어느 순간 일이 아니라 주변 소리에 머릿속이 산만해진다. 귀에 에어팟을 꽂고 음악을 골라본다. 뭘 들으면 집중이 잘 될까?(나는 혼자 처리하는 일이 위주인 기획자+디자이너라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해도 무방하다) 그러다 얼마 전에 본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인 말러 교향곡을 누른다. 워낙 음악이라면 장르를 안 가리고 듣는 체질이라 클래식도 좋아하는데, 첫 곡으로 켠 말러 이후로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이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


그다음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이 곡은 약 11분 정도 되는 곡인데 한 곡 안에 정말 다양한 정서가 있다. 곡의 흐름이 여유로움과 긴장감을 넘나들면서 내가 곡에 따라가는 느낌이다. 오히려 음악을 듣고 있다기보다 내가 그 곡 속으로 들어간 느낌. 업무에 집중도 잘 되었다. 나는 속으로 얘기했다. 아.. 너무 좋다. 그래 리프레쉬 휴가는 오스트리아다. 그렇게 나는 주말에 티켓을 끊었다.


10월 중순에서 말, 목적지는 오스트리아!


그런데 덜컥 130만 원을 결제하고 보니 두려움이 엄습한다. 잘하는 건가..? 너무 오랜만의 여행이라 혼자 어딘가에 가는 것이 두려웠고, 갑자기 이렇게 큰돈을 날 위해 쓰는 것이 맞는지 끝없이 의심된다.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돈을 쓰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어릴 땐 혼자서 유럽 여행도 곧잘 가곤 했었는데 그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고, 오히려 겁이 없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혼자 있는 걸 싫어한다. 그렇지만 지금 비행기표를 취소하면 나는 계속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3,6,9년 이상 다니면 다음 해에 15일 유급 휴가와 100만 원을 지급한다. 그래서 갈 수 있었던 걸지도..


취소하면 수수료 6만 원 정도 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일단 어디가 좋은지 볼까..? 싶어서 구글맵을 켜 지도에 핀을 꽂다 보니 취소할 생각은 온데간데 사라져 버렸다. 처음엔 클래식을 들었을 때 시끄러운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 좋아서였으나 점점 찾다 보니 가고 싶은 곳은 또 왜 이리 많아지는가. 오스트리아가 이렇게 볼 것이 많은 곳인지도 몰랐다. 특히 동쪽 지역은 알프스 산맥도 있어 도시와 문화,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이다. 대학생 때 패키지로 한 번, 27살에 언니와 빈만 또 한 번, 도합 2번의 경험이 있어 좀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오스트리아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은 아니었다. 처음 유럽 여행을 다녔을 땐 종이 지도를 보며(스마트폰 없던 시절ㄷㄷ) 알음알음 길 물어 관광지 위주로 다녔었고, 사람들이 가는 곳엔 다 가보고 싶은 깃발 꽂는 여행이었다. 중간중간 휴양지로도 여행을 다니면서 쉬기도 했고, 20대 후반 스페인 여행을 두 번 갔을 때부터 나에게 맞는 진짜 여행의 스타일을 알게 되었다. 세비야의 한적한 동네의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쉬다가 아무 계획도 없이 작은 동네를 걷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 카페에 잠깐 들러보기도 하는 그런 여유의 참맛도 알게 되었다.


작년과 올해 지금까지 참 다사다난했는데,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했던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꽉 채우는 여행을 계획해보려 한다. 일단 첫 번째는 클래식 공연이다. 처음 여행의 동기가 음악이었으니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을 찾아보기로 한다.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겠지만, 나는 모차르트보다는 러시아인인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는데 마침 빈에 있는 기간 동안 뮤지크페라인(빈 음악협회 공연 Musikverein)에서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 곡 연주가 있어 예약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벌써 공연장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https://beta.thewiki.kr/w / 내가 예약한 표



두 번째는 러닝이다. 최근에 러닝을 하게 되면서 든 생각인데, 해외여행을 가면 러닝을 하며 온 몸으로 도시를 느껴보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빈(Wien)에서는 궁전 정원이나 도나우 강변, 첼암제(Zell am see)에서는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호수에서 뛰어보려 한다. 그렇게 잘 뛰는 편은 아니고 운동복도 챙기고 빨래까지.. 조금은 번거롭지만 나를 위한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 한다. 아마도 앞으로 어떤 곳을 여행가게 된다면 러닝 하기에 좋은 환경인지도 고려할 것 같다.


http://brand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7/2017051701860.html
http://www.stubbyplanner.com/bucket_detail.asp?fromplanner=1&expserial=2707



세 번째는 카페다. 유럽 예술가들이 카페에 모여 대화하고 서로 영향을 주었던 살롱문화는 이제 유럽에서도 사라졌지만, 그 유명한 예술가들이 모여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눈 역사적인 장소를 느껴보고 싶다. 하루는 아침 일찍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계속 보려한다. (벌써 책도 샀다 ㅎㅎ 읽어보고 싶어서 근질근질 하지만 참아야지.) 이게 바로 유럽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모든 것이 옛 것 그대로 남아있어서 언제 가도 변하지 않는 모습.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니까. 아무도 날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더 선명해질 것이다.


하벨카 카페 : https://g.page/hawelka-at?share


카페 첸트랄 : https://goo.gl/maps/7pLqFomnA7TeWcQA9



네 번째는 미술관과 다양한 현지 체험..? 이 될 듯한데 이건 아직 미정이다. 미술관은 두 번째 빈에 방문했을 때 둘러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에곤 쉴레나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다시 보고 싶긴 하다. 그러다 전엔 가보지 않았었던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마크 로스코'의 특별전을 한다는데 이건 꼭 가볼 생각이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은 꼭 실물로 봐야지 제 맛이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로 유명 작품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수가 적어졌기 때문에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특히 마크 로스코는 미국에 작품들이 많을 것 같은데.. 당분간 내가 미국을 갈 일은 없으니 ㅎㅎ 어쨌든 나는 행운아다.



https://brunch.co.kr/@namudayz/15


첼암제에서는 2박 3일로 짧게 머물며 러닝과 온천, 알프스 산맥을 보고 올 예정이고 그다음 도시는 잘츠부르크이다. 잘츠부르크는 아직 많이 알아보진 않았지만 근교 도시 체험과 패러글라이딩을 계획해보려 한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니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리프레쉬가 되는 느낌이다. 내가 드디어 리프레쉬를 간다는 얘길 듣더니 동료가 묻는다.


"다시 돌아올 거죠?"

"하.. 당연하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게 여행이라 했다. 돌아와야 하는 건 알지만 지금과는 다른, 그게 좋든, 멋지든, 못 나든 다른 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해 본다.


일단 가기 전에 영화 <비포 선 라이즈>부터 다시 봐야겠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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