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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Oct 24. 2022

비엔나에서 처음 만난 30대와 60대 여자 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오스트리아 여행

유랑에서 동행 찾기로 만난 나와 그녀는 보자마자 반갑게 웃었다. 나는 숱한 여행을 하면서 낯선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유럽 기차역에서 마주쳐서 모르는 걸 묻거나 관광지에서 이 줄이 티켓팅 하는 줄이 맞냐는 흔한 질문 말고는 한국인과 잘 섞여 놀지 않는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걸진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번엔 오랜만의 혼자 여행이라 왠지 밥 한 끼 정도는 한국인과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의 연락을 받았고 빈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만났다. 지금도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와 참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나보다 그녀가 먼저 빈에 도착했으므로 그녀는 자기와 있을 때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오페라 하우스 야경이 잘 보이는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날 데려갔다.



도착한 날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시내 투어를 받는 기분으로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동행했다. 저녁도 아직 안 먹었다고 하셔서 밥부터 드시라고 했는데 내 시간 뺏는 게 싫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오히려 여행 다니다 보니 미술관에서 작품 하나 더 보는 게 낫지 밥 먹는 건 귀찮다는.. 이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혼자 며칠 여행을 하다 보니 나도 그러고 다니더라 ㅎㅎ.


그렇게 링 안쪽의 호프부르크 왕궁, 광장, 야경들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혼자 오기 무섭다는 유랑 카페의 나의 글을 보고, 이 늙은이도 혼자 오는데 겁내지 말라고 해주고 싶었다며 카페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왜 오스트리아에 오게 되었는지 까지. 두 시간 동안 짧지만 농도 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오스트리아는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멋이 있고, 본인처럼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며 정말로 오스트리아에 푹 빠져있는 그분의 표정에 나이를 넘어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를 타지에서 만난 느낌까지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혼자서도 여행을 온 그분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남편이 자꾸만 집에 있는 강아지 사진을 보내지만 본인은 여행에 집중할 거라며 한바탕 같이 웃다가 우리는 내일모레에 함께 볼 공연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내일 오전에 벨베데레 궁전을 뛰기 위해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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