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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서 처음 만난 30대와 60대 여자 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오스트리아 여행

by 희경

유랑에서 동행 찾기로 만난 나와 그녀는 보자마자 반갑게 웃었다. 나는 숱한 여행을 하면서 낯선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유럽 기차역에서 마주쳐서 모르는 걸 묻거나 관광지에서 이 줄이 티켓팅 하는 줄이 맞냐는 흔한 질문 말고는 한국인과 잘 섞여 놀지 않는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걸진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번엔 오랜만의 혼자 여행이라 왠지 밥 한 끼 정도는 한국인과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의 연락을 받았고 빈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만났다. 지금도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와 참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나보다 그녀가 먼저 빈에 도착했으므로 그녀는 자기와 있을 때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오페라 하우스 야경이 잘 보이는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날 데려갔다.



도착한 날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시내 투어를 받는 기분으로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동행했다. 저녁도 아직 안 먹었다고 하셔서 밥부터 드시라고 했는데 내 시간 뺏는 게 싫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오히려 여행 다니다 보니 미술관에서 작품 하나 더 보는 게 낫지 밥 먹는 건 귀찮다는.. 이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혼자 며칠 여행을 하다 보니 나도 그러고 다니더라 ㅎㅎ.


그렇게 링 안쪽의 호프부르크 왕궁, 광장, 야경들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혼자 오기 무섭다는 유랑 카페의 나의 글을 보고, 이 늙은이도 혼자 오는데 겁내지 말라고 해주고 싶었다며 카페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왜 오스트리아에 오게 되었는지 까지. 두 시간 동안 짧지만 농도 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오스트리아는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멋이 있고, 본인처럼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며 정말로 오스트리아에 푹 빠져있는 그분의 표정에 나이를 넘어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를 타지에서 만난 느낌까지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혼자서도 여행을 온 그분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남편이 자꾸만 집에 있는 강아지 사진을 보내지만 본인은 여행에 집중할 거라며 한바탕 같이 웃다가 우리는 내일모레에 함께 볼 공연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내일 오전에 벨베데레 궁전을 뛰기 위해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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