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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Oct 26. 2022

비엔나 카페에서 여유로운 독서와 최고의 클래식 공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오스트리아 여행

셋째 날은 아침 일찍 책을 읽었던 습관을 유지해보려 현지인 단골만 방문한다는 카페 하벨카에 갔다. 카페 하벨카는 커피도 맛있지만 1945년도에 생긴 후로 오래된 역사를 함께 하는 곳이다. 유럽 카페들은 아침 일찍 열어 좋다. 여행 때 읽으려 아껴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관련 책을 들고 카페 한켠에 자리 잡았다.



커피와 아펠스트루델(애플 파이)를 시켰다. 현금만 가능하므로 방문할 사람들은 참고하면 좋겠다. 오전 8시 30분쯤 도착해 한창 책을 읽는데 사람들이 꽤 온다. 9시가 되니 자리가 없어 다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커피와 애플파이 맛은 아침잠을 깨울 만큼 너무나도 맛이 좋았다. 가져갔던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관련 책이었는데, 여행 중에 꾸준히 달리기를 하려 했던 나에게 러너 동지가 생긴 느낌을 주어 책 선정을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니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양보해야겠다 싶어 미리 봐 둔 근처 와인 전문 판매점과 양초가게를 찾아 나섰다.


와인 전문점에 엄청나게 많은 와인이 있어서 고르기가 어려웠는데, 직원이 이미 손님과 한참 동안 상담 중이라 그냥 나 혼자 고르기로 했다. 와인 라벨을 찍으면 맛을 알려주는 어플인 비비노로 미리 봐 둔 와인을 비교해보며 골라보았다. 잘 고른 건지는 모르겠다. 오스트리아는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고 생산자는 바하우를 익히 들어 2020년 바하우 와인으로 골랐다. 한 시간 동안 비교해보며 고른 와인을 점원이 잘 골랐다고 씩 웃는다.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나슈마르크트 시장을 한 시간 정도 구경하다 추워져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숙소 근처에 화덕 피자 맛집이 있어서 픽업 후 따듯한 물에 몸을 녹이고 점심을 먹었다.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 유랑에서 만난 그녀와 공연을 보러 갈 준비를 했다. 클래식 공연엔 그에 맞는 옷차림을 입어야 하기에 이 날만을 위한 구두까지 꺼내 신고 밖을 나섰다.



우리는 또 반갑게 만나 저녁으로 베트남 음식을 먹으며 오늘 공연에 대한 이야기와 어제 어딜 다녀왔냐는 여행 후기들을 늘어놓으며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공연장에 도착해 각자 예매한 자리를 찾아 착석해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렸다.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이 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므로 좋은 자리에 앉아 관람하고 싶어 발코니 중앙 좌석으로 예매했었다. 한 좌석도 빈 곳이 없이 꽉 찼고 웅성대던 관객들은 프랑크 푸르트 심포니와 러시아 피아니스트 말로피예브가 자리에 앉으니 일순간 정적이 되었다.


이번 공연의 1부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과 2부 스트라빈스키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1부의 1악장과 2악장이 끝나고 브라보! 소리와 함께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클래식 공연 경험은 없던지라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감동이란.. 정말로 잊지 못할 것 같다. 피아노 협주곡이라 피아노가 주인공이라 생각했는데 곡이 절정에 달할수록 오케스트라 연주자 하나하나의 몸짓과 감정이 전체적으로 눈에 들어오면서 곡이 조화롭게 느껴지는 그 벅찬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짧은 인터미션 때 그녀와 만나 와인 한 잔을 급하게 마시며 1부의 그 감동을 이야기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2부가 시작되는 종이 울려 서로 각자의 자리에 착석했고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공연의 곡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던 곡이었음에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명성만큼 소름 돋는 공연이었다. 정말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이었다.


돌아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오늘 공연한 피아니스트의 인스타그램도 팔로잉하고 유튜브를 뒤지며 잠들기 전까지 라흐마니노프 영상을 몇 번이나 되돌려 보았다. 오늘의 이 장면은 눈을 감으면 다시 그 때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기억이 날 만큼.


알렉산더 말로피예브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영상

https://youtu.be/SCHg9tup9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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