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경 Apr 30. 2023

3개월에 걸쳐 읽은 나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인간은 왜 나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추천하는 책

악마와 신이 전쟁을 하는데 그 전쟁터가 되는 곳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소설을 안 읽는다?

최근 소설책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걸 들은 주변 사람들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말하길래 오기가 생겨 소설책을 찾아보고 있었다. 현대 소설은 왠지 끌리지가 않고 고전 소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아침 스크럼 회의에서 회사 동료분에게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고 하셔서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러시아 음악가인 라흐마니노프도 좋아하니(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라흐마니노프르를 듣고 있다) 러시아 소설도 궁금해져 그날 바로 온라인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구매했다. 알고 보니 총 3권인데 1권이 이기적 유전자만큼 두꺼워서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렇게 책을 펼쳤는데..


왜 하필 고전 문학인지

평소에도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부서가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면서 인간 자체에 대한 나의 고뇌는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다. 내가 하는 기획과 디자인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더 흥미를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야인데 참 적성을 잘 찾은 것 같다. 그렇지만 좋은 게 있으면 나쁜 법도 있는 법. 사람이 좋다가도 사람에게 실망할 때면 더없이 좌절감을 많이 느낀다. 참 피곤하게 사는 인생이다. 남들이야 어쨌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인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이 갈증을 채워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등장인물의 대사와 생각이 많이 쓰인 고전 소설은 나 같은 인간에겐 이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수단 중에 하나가 되었다.


1권을 다 읽어서야 그려지는 인물 관계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권 중 1권을 읽었는데, 초반 부분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좁은 문을 열고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날 압도했다. 주인공이 삼 형제로 3명이나 되고 그 주변 인물들까지.. 거기다 보통 사람의 머리론 이해하기 어려운 삼 형제 아빠의 행동을 묘사한 글을 읽으며, 이 스토리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계속 의심했고 어렵게 한 장 한 장을 넘겼다. 1권 거의 말미쯤이 되어서야 복잡한 인물관계도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도 헷갈리는 인물들도 있다. 러시아 이름이 워낙 길기도 하고 이름과 성을 같이 나열하다 보니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

철저하게 이 소설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인간은 언제 나약해질까? 그것은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왜 나는 그 얘기를 그때 하지 못 했을까? 왜 이런 수치심이 드는 걸까? 어떤 의문이 시작되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불완전하고 미숙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견딜 수 없는 나를 알아채고 고뇌는 끝도 없이 깊어지는 것이다. 10명이나 넘는 등장인물들과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한 명 한 명마다의 생각과 의문을 밑바닥부터 훑어내어 우리를 몰입하게 하는 게 이 소설의 진면목이지 않을까 싶다.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통해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똑같이 생각했을까? 어떻게 대처했을까? 대입해 생각하다 보면 나도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신에 대한 질문

죄악과 죄책감 같은 인간 심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보통 종교적인 요소가 짙다. 사회가 규정해 놓은 테두리 바깥에서 잔인한 살인을 계획한다거나 하는 것은 인간의 보통 생각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신에게 기대어 질문을 하는 것 같다. 같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 신이 있다면 당신이 대답해 보시오. 하는 식의 것이다. 삼 형제 중 둘째가 자신이 생각하는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 <대심문관>으로 표현해 놓았는데,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는데 그 자유를 갖고 인간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며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대심문관은 신에게 질타를 한다. 그런 질타에도 마지막에 신은 아무 말 없이 그에게 입을 맞추며 소설은 끝난다. 본인도 인간이면서 인간을 혐오하는 대심문관도 어떻게 보면 스스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에게 자꾸 질문을 되묻는 것이 아닐까? 실체가 없는 존재에게 자신의 고뇌를 질문하며 답을 찾으려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보자. 지금 이 순간 나의 생각조차도 정리가 안 되는데 한 명의 등장인물의 생각을 하나부터 열까지 바닥부터 싹싹 긁어모아 글로 옮겨놓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들을 글로 옮겨두어 어떨 때는 두서없어 보일 수 있고 자신이 만든 허구의 인물이라고 해도, 십 수명의 등장인물의 대사를 글로써 심지어 스토리도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는 것은 존경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작가로서의 경외심도 그렇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 작가의 치열한 고뇌를 담은 작품으로써 그 가치는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긴 시간을 들여 인내심을 갖고 읽은 독자로서 몇 마디를 더 첨언해 본다. 소설 속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복잡한 생각을 받아들이기 벅차 책을 읽는 내내 힘들기도 했었는데, 그럼에도 이미 백여 년 전부터 내가 하는 고민을 누군가가 했었고 그걸 이렇게 남겨주었구나 하고 생각해 보니 그 나름대로 위로가 되어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생각들을 미리 대신해준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한 생각이 든다. 책을 읽은 지는 한 달이 지나가고 이제야 독후감을 남기게 되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책장을 펼쳐보게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을 바꾸는, 이야기의 힘 - 이어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