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가정이지만, 만약 결혼이란 걸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와 함께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혼자 살았던 적도 있지만 대체로 둘이서 살아왔고, 그 경험의 대부분은 좋았지만 종종 너무 아팠다. 그 둘에는 보통 친구나 자매가 포함되어 남보다는 괜찮겠지 했다. 그런데 동성이건 이성이건 피가 섞였건 섞이지 않았건 타인과 산다는 건 부족한 월세의 보충분이거나 더 나은 공간을 위한 투자에서 시작해 소용이 다할 때면 끝이 났다. 누구의 잘못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관계에는 진통이 있다, 류의 이야기다.
그래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여자 둘이든 남녀든 어른과 아이든 서로 다른 배경으로 다른 시간을 관통해온 사람들이 만나 한 공간에서 살림을 꾸린다는 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이란 걸.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다르다고 했던가!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신혼생활 내내(신혼의 기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종료되었음은 확실하다...) 남편에게 '너님 누구?'의 심정이었는데, 짐작은 했지만 진통은 생각보다 훠얼씬 강력했다. 집을 함께 쓰기로 한 동거인이 마음에 안 드는데 심지어 어지간하면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단다! 찢을 수 없는 계약서를 찢고 싶은 심정이 될 때면, 결혼이란 "더 넓고 덜 낡은 집으로의 이사, 셋집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오래된 빌라에서 신축 아파트로의 이동에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가미된 것"으로 정의하고 조미료맛에 인상을 찌푸려보곤 했다. 다툼 후 새벽비를 맞으며 혼자 조깅을 하거나 누구 하나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카페를 전전할 때 특히 그랬다.
물론 성별도 관계도 다르지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역시 타인과 공동의 살림을 꾸려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 공감가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친구 둘(심지어 성인이 되어서 트위터로 알고 지내던)이 어떻게 같이 살게 되는지, 그야말로 집을 구하는 과정부터 살림을 꾸리고 서로의 다름을 알게 되고 인내하고 이해하고 타협하는(타협인지 변화인지 둘 다인지) 과정을 보여준다. 일방의 글이 아닌 서로의 글이 교차되어 누구 하나를 오해하게 되는 일이 없었고, 취미도 생활도 일도 관계도 멋진, 비슷한 연배의 두 여성이기에 대리만족하는 맛도 쏠쏠했다. 그들이 보여준 '결혼 아닌 생활공동체'가 하나의 사례가 되고 그 뒤로 무수한 사례들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나와 그가 이루는 '우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역시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러하다.
나는,
어떻게 보면 호탕하고 어떻게 보면 소심하다. 복잡한 듯하지만 단순하다. 공감력이 좋고 감성적이기도 하다. 사람을 상대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남을 웃기고 뿌듯해하는 마음이 있다. 가만 있는 걸 좋아하는 듯하지만 무료한 것을 못 참는다. 갈등은 그 자리에서 풀길 원한다. 감정을 바로 표현한다.
벗어둔 양말이 안방에도 거실에도 옷방에도 있다. 평소엔 청소에 거의 무관심하다가 정말이지 가끔 한 번씩 꽂히면 청소기 흡입구에 낀 묵은 때를 벗기고 싱크대 물때를 닦는다. 물건이든 뭐든 잘 버리지 못한다.
요리는 하지만 설거지는 싫어하고 쇼핑을 싫어한다.
K는,
섬세하다. 감성적이다. 아주 작은 말 한마디에도 큰 울림을 겪는다. 남을 배려하는 편이다. 타인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고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단순한 듯하지만 복잡하다. 마음이 상하면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정리를 잘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어딘가에 쑤셔두고 못 찾는다. 매일 살림을 살피는 것 같은데 디테일이 부족하다. 나보다 더 버리질 못한다. (최대한 드라이하게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불만이 드러나는 건 왜인가)
요리는 어려워하지만 쇼핑은 좋아한다.
그렇게 모양도 무늬도 결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저떻게 모서리를 둥글려가며 이제 3인 체제에 이르렀다.
여2, 남1 / 어른2, 아이1 / B형2, O형1, 어떤 식으로든 2:1이 되는 구조가 되어 둘이 한편이 되거나 셋이 한마음이 되면서 살아가고 있다. 둘에서 셋이 되는 건 더 기이하고 강렬한 경험이다. 이 역시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집에는 여자2 남자1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중의 하나인 나는 "절대 같이는 못 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책에서 표현했듯 동거인들이 쭉쭉 자라나기에 윤택한 기후대가 되거나 그들의 안전망으로 기능하면 좋겠기에, 조금은 애를 쓰며 살고 있다.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다.” 김하나가 늘 강조하던 이야기처럼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고 있다. 다른 온도와 습도를 가진 기후대처럼,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이 된다.
-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