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활보 Sep 01. 2021

9월 되자마자 추억하는 핫 썸머 썸머

아무튼 시리즈의 애독자다. 초창기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서재>부터 최애작 <아무튼, 술>과  <아무튼, 비건>까지 시리즈의 많은 책을 열독했다. 아무튼 시리즈를 내는 세 출판사의 최고작은 무엇인지 혼자 품평해보고, 쓰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하, 내가 쓰면 무슨 주제가 좋을까, 나에게 아무튼이라고 할 만한 게 있나, 고심케 했던. 만약에 있다면 여름 정도겠지? 했는데 <아무튼 여름>이 나왔다. 엄청난 반가움과 약간의 배신감을(대체 왜?) 동시에 느꼈다.


아, 젠장 맞을 여름, 너무 덥다, 여름 꺼져, 꿉꿉해, 가을이여 와라!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 심지어 우리 집 6세 어린이가 "엄마, 난 겨울이 좋아. 여름은 너무 더워. 머리카락이 자꾸 목에 붙어. 언제 겨울 돼?"라고 물을 때도 매몰차게 "아, 진짜? 엄만 여름이 너무 좋아!" 했는데. 여름 최고! 핫썸머 썸머썸머! 오늘 날씨 어쩐지 동남아 휴양지 같지 않아?(휴양지는 가본 적도 없으면서) 비가 이렇게 쏟아지다니 스콜인 줄!(비 피해가 없었기에 가능한 말입니다) 하고 떠들어댔는데.

 

나는 여름이 좋다. 작열이라는 단어를 눈으로, 피부로 알게 해주는 햇살이 뒤통수와 드러난 발등을 쪼는 느낌까지도 좋다. 숲길을 걸을라치면 몇 걸음 못 가 뒷덜미에, 콧잔등에, 겨드랑이에, 온몸의 접히는 부분은 당연지사, 그저 매끄럽게 뻗은 팔이나 다리에도 땀이 새싹처럼 돋아 결국엔 주르륵 흐르는 순간이 오는데 그것마저 상쾌하다(이쯤 되면 변태인가). 추위에 손끝 발끝과 털까지 오그라드는 겨울에는 결코 느끼지 못하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쫙쫙 다려 펴지는 느낌이 만족스럽다. 여름은 줄곧 내게 “너, 살아 있어!" 하고 속삭여준다.


어린 시절, 생계로 바쁘던 부모님조차 더운 여름엔 쉬었다. 집에서 40분 거리의 바닷가로 가서 아빠는 텐트를 치고 엄마는 바위에서 홍합 같은 것들을 따 삶아주거나 라면을 끓여주었다. 분명 종일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희어 놀림받던 피부는 어느새 손자국 난 것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그것이 갈색으로 변하고 껍질이 벗겨져 다른 색의 피부를 갖게 되는 것이 또 좋았다. 지금에야 그 바닷가에서 엄마는 얼마나 덥고 심심했을까 싶은데, 그 시절의 나는 바쁜 엄마와 종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 여름을 기다렸다.



대학에 와서는 여름마다 동아리에서 등반을 했다. 설악산이거나 지리산, 속리산일 때도 있었다. 스무 살의 첫 산행, 달을 보며 걷기 시작해 다음 날 몸이 조금 두터워진 달을 보며 하산했다. 스무 살의 무릎도 아작이 날 수 있다는 걸 등반 이후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느꼈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하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산 다음은 바다니까. 산에서 달궈진 몸을 바다에 던졌다. 설악산 다음은 동해, 지리산 다음은 남해였다. 그 시절 모두가 그랬듯(확신합니다) 술에 쩔은 몸이 디톡스되는 시기였다.


올여름 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거기서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나'를 대면했고, 번아웃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한철 쉬었다. 무위의 상태로 쉰 것은 생에 처음이어서 어떻게 쉬는 줄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엄마 아빠의 여름 하루를 들여다보았다. 해 뜰 때쯤 일어나 잠깐 밭일을 하고 더위를 피해 이것저것 소일하다가 해질 때 자는 단순한 삶이었다. 옳았다. 여름은 쉼의 계절이다. 도시인인 나는 해에 따라 움직이진 못했지만 더위를 피해 산책을 하거나 사람 없는 계곡에 발을 담갔다. 지구를 걱정하며 여름 내내 에어컨은 5번만 켰고, 평소 잘 못하는 찬물 샤워가 가능한 여름을 즐겼다.


번아웃이니까, 생산성 있는 일에는 아주 조금씩만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그랬는데도 작은 텃밭에 주렁주렁 열매가 달렸다. "아이, 해준 것도 없는데 뭘 이런 걸 다" 하면서 열매를 낼름낼름 따먹었다. 짙은 달큰함으로 파리뿐 아니라 나의 지갑까지 꾀는 여름 과일들, 살구 앵두 자두 복숭아도 베어 물었다. 메밀국수, 콩국수 같이 시원한 것을 만들어 먹으며 뒹굴거렸다. 잠시 쉬었던 맥주도 홀짝대보고 너무 덥던 어느 여름밤엔 처음으로 노브라에 박스티로 동네를 활보해보았다. 그리고 자주, 글쓰기 모임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했다. 늘 긴장해 경직돼 있던 어깨가 조금씩 말랑해지고 새우처럼 굽었던 등도 친구들의 손길에 펴졌다. 번아웃이 버닝 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름은 곳곳이 추억이다. 그 추억들은 여름이면 신이 나서 평소보다 용기+에너지가 사이즈업된 내가 만든 것들이다. 물론 겨울 추억도 있겠지. 하지만 내게 겨울은 이별의 계절이었고 외풍이 심해 손이 자꾸 곱아가던 자취방에서 가스비를 염려하거나, 외로움 하나로도 벅찬데 추위가 함께 덤벼들어 뒷걸음질만 쳤던 빙하시대였다.

 

다른 건 몰라도 자연과 맞닿은 조상의 지혜는 훌륭해서 절기는 언제나 옳다. 나는 남들보다 이르게 가을을 느꼈다, 아니 여름이 지나가는 것을 재빠르게 캐치했다. 8월 7일 입추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아침저녁 열기가 빠져나간 공기를 느꼈고, 8월 23일 처서에는 모기 입이 더 삐뚤어지길 응원하며 더 이상 밤에 선풍기를 켜지 않게 되었다. 코로나로 수영장에 몸 한번 못 담갔는데, 벌써 여름이 가버린 것이다.


아, 나의 핫썸머 썸머,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것도 좋다. 사계절이 아니었다면 여름 좋은 줄 모르고 매일 반복되는 더위에 나자빠져 배를 까고 흐느적대고 있을지도 모를 일. 내년 핫썸머가 지나고 나면 <아묻따 썸머>를 쓸 수 있도록 여름 추억을 발굴하고 지리산 종주나 수영 같은, 잠시 멈춘 여름활동들을 개시해야겠다.


여름은 늘 그런 식이다. 부푼 가슴으로 기다리면서도 정작 다가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맛만 다시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예상보다 많은 추억이 쌓여 있다. - <아무튼, 여름>, 김신회


#Day7 #여름 #야.나.써 #딱:삔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집은 어디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