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무서운 사람 아니야...
K가 일찌감치 퇴근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바빴다. 아파트 입구에 막 들어섰는데 안쪽 언덕배기에서 꼬맹이 하나가 울면서 뛰어내려왔다. 파란 잠바에 귀염성 있는 얼굴이었는데 훌쩍이는 게 아니라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였다. 뒤따라 내려오는 성인여성이 아무래도 아이와는 관련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마음이 쓰였다. 가던 길 멈추고 허리를 숙여 꼬맹이를 불렀다.
"왜 울어?" (글자로 보면 딱딱해 보이지만 한 없이 부드러운 말투였다.)
"이모가 없어요 흑흑."
"이모? 엄마는?"
"엄마는 병원갔어요."
"언제 오셔?"
"밤에 와요."
"이모는 어디 갔어?"
"이모가!#$^T%&#$"
"엄마 전화번호 몰라?"
"네."
"집은 어디야?"
눈물 섞인 침묵. 그러던 중 유치원 로고가 박힌 아이의 노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모가 유치원에 전화해서 선생님한테 물어볼까?"
(갑자기 울음을 좀 그치더니 진지하게) "유치원은 끝났는데요..."
말이 끝나자마자 방향을 틀어 아파트 밖으로 나가려기에 소리쳐 부르며
"큰길로 나가면 차가 많아서 위험할 것 같은데?"
그 자리에서 멈칫.
"이모가 경비아저씨한테 물어볼까? 집에 누구 있는지?"
"아뇨."
어쩌지 어쩌지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기에 뒤따라보니 앞동의 한 현관.
"비밀번호 알아?"
아이는 끄덕이는 법을 모르는지 야속하게 고개를 또 젓고. 마침 현관에는 택배주인을 호출하고 있는 택배기사님이 계셨는데 혹시나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안 해도 될 말을 주워삼키며 내가 이 아이를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을 한껏 어필하기에 이르렀다.
"집에 못 들어가서 어쩌지? 이모는 다른 동에 살아서 이모카드가 맞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번 찾아보자."
가방을 뒤적이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사정을 다 안다는 듯 기사님이 아이에게 "들어가자~" 하셨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어른들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아이는 잽싸게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몇 걸음 계단을 따라올라가던 나는 집요하게 그러는 것도 멋쩍고 집에 못 들어가면 다시 나오겠지 하면서 1층에서 기다리는 자세를 취한 채 또 안해도 될 말, "아니 애가 길에서 울고 있더라구요. 이모가 없다네요? 집 비밀번호도 모른다는데 잘 찾아갈 수 있으려나..."라고 말끝을 흐리는데 저 위 어딘가에서 아이의 발소리 끝에 쾅쾅쿵쾅 어쩌고 저쩌고 사람 소리가 들렸고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잘 찾아 들어갔겠죠?'라는, 딱히 기사님께 던지는 질문 아닌 질문을 남겼고 웃음을 남긴 기사님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이는 집을 찾은 듯한데 나는 이 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못 찾고 있다. 그래서 아이의 이모는 누구인가, 아이는 어디서 이모를 잃은 건가, 아이가 길을 잃으면 아무리 제 사는 아파트 단지 안이라도 집을 찾기란 쉽지 않겠다, 왜 저 인터폰은 아이의 손에 턱없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가, 집 비밀번호를 안다고 해도 키 작은 아이는 집에 들어갈 수 없겠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돕는 최선은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K는 왜 늦었냐며 눈꼬리를 올렸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했더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었다. 내가 아이를 갖게 되고 아파트에서 키운다면, 으, 끔찍하다. 나 살던 시골에서였다면 지나가던 할머니가 "아이고 저 OO이네 큰아들 울고 저 섰다. 어매 어디갔노?" 했을 텐데. 아니 길을 왜 잃어. 집의 크기도 모양도 다 달라 우리집이 어딘지 딱 알겠고만. 게다가 코딱지만한 촌동네에서. 그리고 나 혼자 울고 서 있도록 내 동네친구가 가만 있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