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도저히 못 다니겠다. 이건 정말 아니야. 연휴가 지나면 그만둔다고 말해야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나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토요일 늦은 오후. 미리 예매해 놓았던 고향 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센트럴시티 터미널로 향했다. 요즘 불안장애로 약을 먹고 있는데 아무쪼록 공황발작 없이 무사히 집에 내려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터미널은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유 없이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황한 신체 반응이라 무시하며 버스에 올랐다.
QR을 찍고, 인원수를 확인하고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를 마치고 출발하는데 마치 우주 탐사선이라도 탄 듯한 의미심장한 분위기. 차로 넘쳐나는 강남을 빠져나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나는 잊고 있던 갈등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추석에 친척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편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했다. 막힐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평소보다 빨리 고향에 도착했다.
역시나 도착하자마자 온갖 갈등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동생의 시댁과의 갈등, 친척들의 속 터지는 이야기...
나는 내 퇴사 고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동생이 이번 추석에 시댁에 가서 담판을 지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저녁에 전을 안주 삼아 엄마와 맥주 한잔을 기울이다 말했다.
“나 진짜 도저히 이 회사 못 다니겠어. 진짜 사무실에 앉아 있는 1분 1초가 고통스러워”
“그래도 옮겨갈 데는 만들어놓고 나와야지.”
“1년을 버텼어. 작년에 그만두고 싶었던 거 2, 30대에 돈 모아놓은 것도 없으니까 버텨서 지금까지 온 거라고! 그래서 지금 불안장애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녀!”
별거 아니라는 무심한 표정으로 전을 집으며 엄마가 건네는 말.
“약 먹고 좀 좋아지지 않았어?”
엄마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것이지만 자식이 아프다고 하는데 몰아붙이기만 하는 것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오로지 돈. 돈. 돈.
“돈보다 건강이 중요하지. 뭐 하는 거야? 얼른 관둬!”라고 말하는 부모는 나에겐 소설 속에나 있는 존재. 하긴 안타까운 사망사고 뉴스에 보상금 많이 나온다는 얘기부터 하는 사람인데 내가 무엇을 바랄까.
고향 집엔 내 방이 없어서 나는 항상 휑한 거실 한복판에서 잔다. 예전엔 집에 가면 마음이 놓이고 쉬는 것 같았는데 이젠 전혀 아니다. 추석임에도 가시지 않은 더위에 에어컨을 켜고 자니 바람과 소음 때문에 3일 밤잠을 설쳤다. 거실 한복판 어둠 속에서 나의 불안은 더 크게 일렁댔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고, 우울은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에 생긴다는데 과거와 미래가 뒤범벅되어 텍사스 소 떼처럼 몰려와 나를 무참히 밟고 지나갔다.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낮엔 앉아서 음식만 돼지같이 욱여넣고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긴 연휴가 의미 없이 끝나가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하... 살 것 같다. 이제 살아갈 준비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