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고향 집에 내려갔다. 엄마가 끓여준 냉이 된장찌개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나 식탁에 앉다가 벽에 걸린 액자에 사진을 바뀐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아빠가 직사각형 큰 액자에 사진들을 옹기종기 붙여놓았었다. 10년 만에 사진이 바뀐 것이었다.
어릴 적 여행 갔던 사진, 대학교 졸업 사진, 여동생 결혼식 때 사진...
오른쪽 아래 가장자리엔 내가 대학생 때 광고 공모전에서 큰 상을 타서 했던 인터뷰 신문 기사를 잘라 코팅해놓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졌다. 이제 그 자리엔 조카 둘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사진들은 언제 다 뽑아두고 있었어?”
아무 내색은 안 했지만,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자랑스러운 자식이 아니구나.’
그로부터 몇 주 후 엄마에게 뜬금없는 메시지가 왔다.
”너 선볼 생각 있어? 45살이고 사회복지 쪽 일한다는데 엄청 착하대.”
선이라는 말에 당황도 잠시, ‘엄청 착하다’는 말이 눈에 훅 들어왔다.
“엄마, 다른 건 둘째치고 엄청 착하다는 게 제일 별로인데? 엄청 착하다는 거 보니까 엄청 답답한 사람이겠네”
나는 착하다는 말을 싫어한다. 바깥에선 약았어도, 가족에게 착한 사람이 좋다.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만 많이 보았다. 착하다고 하는 말이 칭찬일까? 줏대가 없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는 사람, 부모 그늘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연상되었다. 그 한마디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결혼하긴 그른 것 같다.
게다가 선이라는 것이 조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뭐 잘났다고 상대를 판단하겠냐마는 45살에 내세울 것이 '착하다'라는 말밖에 없는 사람을 부모님이 나에게 선을 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건가? 어차피 둘 다 나이가 많으니 그런 사람들끼리 결혼이라는 것을 해치워버려라 그런 건가?
혼기가 꽉 차다 못해 넘쳐버린 마흔둘의 딸. 나는 더 이상 자랑스러운 자식도 아니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에겐 내가 뭐라고 소개됐을지 궁금해진다.
"42살이고 웹 디자인한다는데 엄청 착하대"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