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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Nov 04. 2024

프리랜서가 된 INFP 디자이너(2)

프리랜서의 프리한 일상

프리랜서로 일하려고 마음을 먹자마자 운 좋게 하늘에서 일감이 뚝 떨어졌다. 이미 여러 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예전 상사 겸 오랜 지인에게 큰 프로젝트가 들어왔는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5천 원짜리 배너라도 만들어 먹고 살면 다행이다 할정도로 자존감도, 자금 상황도 바닥이었기에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다.


운 좋게 지인 사무실 책상 하나를 쉐어할 수 있게 되어 작업용 컴퓨터도 바로 구입하고, 언제 긴 백수 기간을 보냈냐는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나'였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구직활동을 가장한 완벽한 백수로 지냈기에 디자인에 대한 감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심지어 웹 디자인을 시작한 초반 2년을 빼고는 운영 디자이너로 일했기 때문에 구축사이트 제안 시안을 뽑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인의 조언은 ‘들어오는 일은 다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내가 가릴 처지가 아니니 닥치는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인과 함께 할 프로젝트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고, 쉐어 사무실에 있는 분이 메인 디자인 시안을 부탁했다. 그것이 나의 정식 첫 일감이었다. 부담과 조바심, 예열이 되어있지 않은 나, 촉박한 일정. 그리 좋은 시안을 뽑아내지 못했다. 기획서와 다를 바 없는... PPT의 박스들에 조금의 디자인을 곁들인 실망스러운 디자인. 아마 어떤 시안을 밀어 주기 위한 개수 채우기에 사용될 별 볼 일 없는 디자인으로 쓰였을 것이다. 움츠러들었다.


나의 예열 시간 따위가 사치였는지 모르겠지만, 지인은 나에게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본인이 기대하는 바에 내가 미치지 못했나 보다. 그는 이미 몇 년간 프리랜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가끔 자기 일이 넘치거나 사적인 일이 생겼을 때 대타를 해줄 그런 사람으로 나를 점찍었던 것 같은데, 막상 보니 내가 그렇게 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은 본인인데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카페에 불러 앉혀놓고 마치 자신이 짐을 떠안은 것처럼 나를 추궁했다. 내가 사기를 치기라도 했나? 먼저 손을 내민 건 당신이었는데?




눈치를 보게 되니 타이포, 레이아웃, 아이콘, 컬러... 무엇 하나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럴수록 본질은 흐려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웹 에이전시에서 일했을 때도 입사 타이밍이 좋지 않아 사수에게 배울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이 일을 각자 쳐내기에만 바빴다. 왜 이렇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답답해하다 세월이 해결해 주었다. 운영 디자이너로 일할 땐 주어진 가이드를 지키고 그 안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면 되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숙제였다. 그래서 5주짜리 오프라인 강의를 신청했다. UI/UX 기초 강의였다. 내 경력에 들을 강의가 아니지만 늦게라도 답답함을 해소하고 확신을 불어넣어 줄 것 같았다. 최신 업계 소식도 궁금하기도 했고. 


막상 가보니 대학생, 사회 초년생인 20대들이 가장 많았다. 가끔 30대 초반도 눈에 띄었다. 나이로 치면 아마 내가 탑3에 들어 보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써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강의도 듣고, 평일/주말, 낮/밤 없이 일을 하다 보니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는 많이 성장해 있었다. 지인도 점점 나를 믿어주기 시작한 것 같았다.




프리랜서의 프리한 일상


시간이 흐르고 사무실을 나와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9시 반쯤 일어나 드립 커피를 내려 컵 수프와 빵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는다. 아침을 먹으며 하루 스케줄을 계획하는 오전의 달콤함.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폭염/폭우/폭설에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행복. 회식이나 빌런 동료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늦은 밤엔 맥주 한 캔 때리면서 미친 듯이 질주하던 집중력. 평일에 아주 잠깐 짬이 날 때면 그 여유의 행복감. 입금이 되었을 때 월급과는 다른 성취감. 이런 것이 프리랜서의 삶이구나 맛보는 시간이었다. 혼자 일한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잃었던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고, 마이너스였던 경제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프리랜서에 맞지만, 맞지 않기도 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벗어나 일하는 것은 너무 좋았지만, 공격적인 영업과 일감 찾기는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좋게 들어온 지인의 일감을 소화하는 것이 다였다. 그것이 가장 큰 아쉬움과 자괴감을 줬다. 


나에게 일감을 줬던 지인은 어쩌면 은인과도 같았다. 하지만 프로젝트 이후로 수년째 연락하지 않고 있다. 나도 굳이 연락하지 않았지만, 상대도 그러했다. 대놓고 싸운 적은 없었다. 서로 쌓인 오해 때문일 것이다한동안 불쑥불쑥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느꼈던 것들을 몇 가지 적어본다.


디지털 노마드의 환상

디자이너라면 노트북 하나 들고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카페든 외국이든 떠나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자.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업무에 얽매여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노트북만 하나 들고 떠날 수 있다고 하지만 디자이너는 큰 모니터가 있어야 더 발 빠르게 작업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소로 일과 일상을 분리하자.

그렇지 않으면 24시간 365일 일하는 기분이 되어 쉽게 번아웃이 올 수 있다. 쉐어 사무실에 있을 때는 자연스레 출퇴근이 이뤄지니 집에서는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을 나오고 나니 집에서 일과 일상을 분리하기 어려웠다. 쉬는 시간이 생겨도 일거리를 미리 해놓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컴퓨터 앞에 앉곤 했다. 그러다 보면 집에서 일만 한다. 감옥에 갇혀 일만 하는 형벌을 받는 기분이다. 이렇게 돈을 벌어봐야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견적서

초보 프리랜서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도대체 이 디자인의 가치를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말이다. 기준에 따라 다른데, 수행하는 페이지(메인, 서브, 프로모션)에 대해 값을 매기는 방법과 하나는 시간으로 책정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

친한 사람과 일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일할 때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대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재밌는 것, 좋은 것만 함께 하던 친구가 일로써 만날 때는 분명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친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 것 같다.


일감 구하기

프리랜서라는 것을 사방팔방에 소문내길 바란다.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 같은 SNS에 계정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도 좋다. 몇 가지 마켓을 공유한다.

위시캣 
https://www.wishket.com

프리랜서코리아
https://www.freelancerk.com

프리모아 
https://www.freemoa.net 

원티드긱스 
https://www.wanted.co.kr/gigs

외주나라 
https://ojnara.com

재능넷 
https://www.jaenung.net

라우드소싱 
https://www.loud.kr

크몽 
https://kmong.com

숨고 
https://soomgo.com

유니드잡 
https://www.uneedjob.co.kr

디자인그룹나인 
https://www.designnine.co.kr


자신만의 루틴

혼자 일을 하다 보면 강제성이 덜해서 그런지 집중이 깨지기 쉽다. 나는 오전에는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성향이라 오전엔 짧게 하루 계획을 세우고,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 업무를 집중해서 하고 저녁을 먹고는 무조건 동네 산책을 했다. 그렇게 잠시 쉬고는 저녁에 몇 시간 다시 일에 집중했다. 거래처와의 소통, 업무 능률과 페이스 유지를 위해 각자의 성향에 따라 루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연애와 결혼

이건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프리랜서를 시작하면 인간관계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애인이 있든지 아니면 이미 결혼했다면 모를까 연애하기 참으로 힘든 일상이 펼쳐진다. 물론 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처럼 INFP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방에 앉아서 평일이고 주말이고 일하다 보면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날 사람들은 다 만나겠지만...


고립감

업무 관련 전화가 없었을 땐, 정말 하루에 단 한마디도 하기가 힘들다. 요즘은 키오스크 주문도 많기 때문에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있다. 점점 세상과 단절되어 갈 수 있다. 고립감에 대해 준비하도록 하자.


외부 모임과 활동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외부 모임, 취미, 주기적으로 외출을 해야 하는 운동을 꼭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혼자서 일한다는 것은 아주 지루하고 외로운 싸움이다. 강제적인 외출을 만들어야 일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느끼며 지속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


건강관리

몸이 아프면 정말 큰 일이다. 나를 대신해 줄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병가를 낼 수도 없는 개인 사업자의 삶. 물론 고객과 협의해서 일정을 조율하면 되겠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그만큼 신뢰를 잃는 것이기도 하니 건강은 무조건 잘 챙기자. 너무 밤늦게까지 작업하지 않고,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 노력하도록.

작업을 하다 보면 2~3시간 넘게 그대로 앉아 있을 때도 많다. 의식적으로 반드시 휴식 시간을 가져라. 허리 건강과 하체 혈액순환을 위해 1시간에 한 번은 의자에서 일어나도록 하자.


휴가

마음 편한 휴가를 보내기는 어렵다는 각오는 하길 바란다. 일이 걸쳐있다면 그것대로, 일이 없다면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뜻이니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개인이 마음먹기 나름이겠지만...) 

프리랜서를 하는 2년 동안 명절에 집에 가지 못했다. 가더라도 잠깐 1박 2일로 다녀왔다. 개인 사업자는 맘 편히 쉬기 힘든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할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시안 뽑고, 디자인했으면 이게 얼마야? 몇 개만 했어도 한 달 월급 벌었겠다.’


막상 프리랜서가 되고 나면 그러기 쉽지 않았다. 내가 했던 일은 페이지는 많고 단가가 낮은 프로젝트인 걸 알고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었다. 하루에 24페이지를 쳐내기 위해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갰다. 1페이지당 15분 정도로 잡아 타이머를 맞춰가며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것이 답이 있을 때도 있지만 답이 없을 때가 더 많지 않은가? 규칙을 벗어나는 케이스에서 고민해야 하는 시간과 대처를 하다 보면 시간은 오버된다.

중간중간 정산을 받고 돌아보면 고생한 만큼 손에 쥐어지는 돈이 적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달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 수입이 적은 달도 있을 것을 생각해 보면 항상 마음은 깨진 장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클라이언트가 쌓이고 일이 궤도에 오르면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벌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지인은 그렇게 사업을 잘 이어가고 있었다.


비상금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버는 돈의 10%는 항상 비상금으로 쟁여두었다. 일은 불규칙적이지만 생활비는 매달 필요하니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하든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결정에서 자유로워지지않을까? 나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만 내가 달려들어 하지는 못하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공격적인 영업은 힘들었다. 운 좋게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근근이 먹고 살았다. 어찌 보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감을 주는 사람에게 한없이 약자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부정적인 것만 말했나? 왜 그럴까? 내가 프리랜서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도 나의 MBTI ‘INFP’를 넣지 않았겠는가. 디자이너 중 가장 많은 MBTI가 'INFP'라는 어떤 조사를 봤다. 나를 반면교사 삼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게다가 요즘 AI의 무서운 발전으로 기업에서는 일자리를 축소하기 더 쉬워졌다. 송길영 작가가 말했던 핵개인의 시대가 이미 와버렸다. 우리가 다루는 디자인 툴에도 몇 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는가? 디자이너들도 언젠가는 개인사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적극적으로 내 사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그만둔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 편한 휴가도 가고 싶었고, 매달 안정적인 수입 그리고 퇴근과 주말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운영 프로젝트에 프리랜서 계약을 하였다. 4대 보험과 퇴직금이 없는 대신 후한 월급이 매달 따박따박 나올 프리랜서. 회사원이면서 정직원도 계약직도 아닌, 내 업무에만 집중하며 월급과 휴가, 대직자가 있는 안전한 곳으로 다시 대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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