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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Nov 09. 2022

나만 모르는 소개팅

20대에 시작해 30대에 마무리한 길고 지긋지긋했던 연애를 끝내고 나니 솔로라는 자유가 생소했다. 이별의 고통을 지우려 살사댄스를 진통제 삼아 버티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 벽을 두지 말자’는 나름의 결심을 했다. 

나는 음식은 가리는 것이 없지만, 남자라는 존재는 엄청나게 가리는 유교걸 이었다. 살사바에서도 의도가 있어 보이는 남자는 피해 다니기 바빴다. 간만에 친구와 술 약속을 했다. 자전거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던 친구는 거기서 친한 오빠도 함께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예전이라면 단박에 거절했을 테지만 벽을 허물어 보자는 결심을 했던 터였다.




합정역 5번 출구. 나와 친구는 먼저 역에서 만났고, 곧 친구의 아는 오빠도 합류했다. 그의 키는 여자 중에서 큰 편인 나와 비슷해 보였고, 쥐색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딱히 특징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의 반코트처럼 무채색 같은 사람이었다. 그게 뭐 중요한가? 술 한잔하고 헤어지면 그만인 것을.


우리는 역 주변의 소박한 전집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사실 나는 술자리에 모르는 사람이 끼는 것을 싫어한다. 편하게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할 수 없고,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그다지 없다. 그저 가시방석일 뿐... 친구와 둘만 아는 주제는 빼고, 당시 푹 빠져 있었던 살사 동호회 이야기로 어색한 침묵을 메꿨다. 그는 친구가 자전거 동호회 이야기를 할 때만 몇 마디 거들뿐, 나에게는 간간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마치 증명사진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기억나는 그의 정보는 딱 두 가지다. 본인 친구들은 밖에 나오는 것을 싫어해서 같이 놀 사람이 없다는 것. 예전에 살사 동호회 등록을 고심했었다는 것.


파전이 한두 젓가락 남았을 때쯤이었다.

“나 어제도 술 먹고 늦게 들어갔더니 남편이 오늘 일찍 들어오라네. 미안… 먼저 가볼 게~”

친구는 순식간에 짐을 챙겨 쏜살같이 가버렸다. 석연치 않은 친구의 행동에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가 가자마자 그곳을 나와 커피를 마시러 주변에 익숙한 카페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친구와 자주 갔던 곳이었지만, 그곳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이때부터는 거의 나의 원맨쇼였다.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나는 아무 말이나 했다. 그는 여전히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릴 적 아빠 차에 있던 고개를 끄덕이는 강아지 인형처럼 의미 없어 보였다. 때마침 점원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저희 곧 마감이라서요…”

대단한 희소식이었다. 순식간에 커피숍을 빠져나와 그는 버스정류장으로, 나는 지하철역으로 헤어졌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그가 말했다. 


“저기 전화번호…”

“아, 아까 친구가 만든 단톡방 보시면 저 있어서….”

“아…네…”


나는 남은 계단을 마저 후다닥 내려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자리는 ‘나만 모르는 소개팅’이었다는 것을.


나는 소개팅을 극혐했다. 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만나 서로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는 위선적인 자리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머리가 복잡해졌다.

‘친구는 과연 저 남자와 내가 어울린다고 소개해준 것일까? 친구에게 나는 어떤 이미지의 사람이길래?’

나에게 ‘소개팅할래?’라고 물으면 선뜻 하겠다고 할 위인이 아니란 것을 친구도 알고 있었다. 이전 연애에서 내가 얼마나 마음고생했는지 알기에 무던한 사람을 소개해 준 것도 이해가 되긴 했다. 하지만 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의 이상형은 누군가를 통과하며 만들어졌다. 

고등학교 때 같은 동아리였던 그 아이는 한눈에도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게다가 패션 센스까지 좋았다. 특히 야구모자가 참 잘 어울렸다. 윤계상의 날카로운 눈과 장난스러운 표정을 닮았었다. 실제로 성격도 그랬다. 활발하고 짓궂은 장난기에 여러 여자아이들의 마음을 쓰이게 하는 존재였다. 그를 1년 넘게 지독하게 짝사랑하면서 나의 이상형은 넓은 어깨에 야구모자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러나 대학생 때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그는 고등학교 때 그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야구모자가 어울리지도 않았고, 나보다도 좁은 어깨를 가졌었다. 나는 그때도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며,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했다. 반면 그 친구는 매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인이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에도 같이 밥을 먹자고 갑자기 불러내곤 했다. 그의 주변은 항상 북적였다. 난 그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그가 좋았다. 예고 없이 불현듯 나타나고 사라지는 그 녀석의 무질서함이 좋았다. 그때는 내가 갖지 못한 활발함을 가진 사람이 이상형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을 때마다 또 다른 이상형이 생겨나고 사라졌다. 이상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끌리는 매력’이라고 두루뭉술하게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만 모르는 이 소개팅에 나온 그에게서는 끌림을 떠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함 마저 없었다. 친구는 딱 3번만 만나보라고 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고개만 끄덕이던 그가 보내온 카톡은 너무나 적극적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큰 거부감을 불러왔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개팅은 짧은 헤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이를 먹으니 이상형조차도 이젠 희미하다. 아니. 아무 의미가 없다. 친구처럼 대화가 통하는 편안한 사람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도 철옹성 같은 나의 경계를 와르르 무너지게 할 매력을 가진 사람에게나 가능할 노릇이라는 것을 까탈스러운 나는 알고 있다. 

‘뭐 먹을까?’라는 물음에 외치는 ‘아무거나‘가 진정한 ‘아무거나’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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