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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Jan 08. 2023

오늘도 안경을 끼고 잤다.

달갑지 않은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눈에 물기라곤 하나 없는 것같이 뻑뻑하고 쓰라리다.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고 눈을 비비려 하니 하… 또 안경을 끼고 잤다. 요즘 10번 중 8번은 안경을 끼고 잠든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 안경이 비뚤어지지도 않고 제자리에 안착해 있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안경을 끼고 잠들어도 벗겨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왠지 서글프다.


누군가는 불 꺼진 집에 들어갈 때의 쓸쓸함을 꼽곤 한다. 하지만 나에겐 별 타격감이 없다. 씻고, 밥 먹고, 빨래 돌리고, 널고... 금세 10시다. 설거지도 미뤄두고 누워서 유튜브나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그리고 또 안경을 낀 채 잠든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든데 자식을 케어하는 상상을 해보면 자신이 없다.


요즘 나에게 혼자 산다는 의미는

안경을 쓰고 잠들어도 벗겨주는 사람이 없는 것.

족발을 시키면 삼일 내내 먹어 치워야 하는 것.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부딪쳐도 엄살 부릴 사람이 없는 것.

하지만 평화로운 것.




며칠 전, 오랫동안 조용하던 동호회 친구들 단톡방에 메시지가 왔다. 한 친구의 결혼 소식이었다. 얼굴 본 지가 오래되어 간혹 생일 때나 안부를 물을 뿐이니 어찌 지내는지도 모르다가 갑자기 모바일 청첩장을 받으니 정말 깜짝 놀랐다. 축하를 전하고 나니 뭔가 씁쓸했다.

'결국은 다들 가는구나. 나는 이렇게 독거노인이 되는건가...'

위기감이 엄습한다.


예전에 '불타는 청춘'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고 같이 출연하는 김광규, 최성국이 함께 보호자로 동행해 주었다.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큰 용종이 발견되어 급하게 당일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출혈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하루는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다사다난한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자 친구들은 돌아갔고 혼자 덩그러니 병실에 누워있는 김도균의 모습이 보여졌다. 그때 느꼈다.

'혼자 늙어간다는 것은 저런 거구나.'

하지만 노년을 위해서 누군가와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이기적인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인생은 모르는 것이라고...

그렇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친구의 결혼 소식으로 조금의 위기감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인 노력을 해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마흔한 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은 마트에서 사과를 고르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가 열자마자는 사과 코너에 사과들이 잔뜩 쌓여있다. 그럴 땐 그냥 집어 들어도 색이 예쁘고 좋은 사과를 고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하나, 둘... 사람들이 사과를 골라가고 나면 이제는 조금 상품성이 떨어지는 사과들이 남는다. 그러면 고르는 것에 에너지가 든다. 이 사과, 저 사과 살피고 더미 안쪽에 미처 남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괜찮은 사과를 고를 수 있다. 그리고 마트가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이제는 거의 좋은 사과를 고를 가능성이 낮아진다. 흠집이 있거나 벌레가 먹었거나, 덜 익었거나 모양이 좋지 않는 사과들이 남았을 것이다. 혹여 중간에 변심해 반품한 사과 중 괜찮은 사과를 골라잡아갈 운도 있지만 말이다. 이때쯤 되면 몇 가지 조건들은 포기하게 된다. 모양이 별로여도 빛깔은 괜찮은, 흠집이 있어도 향이 좋은 것으로. 벌레 먹은 것은 '도려내고 먹으면 되지' 하며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조건들을 제외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진열대 멀찍이 서서 팔짱 끼고 바라보며 괜찮은 사과가 내 앞으로 저절로 굴러떨어져 오면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고 만져보고 향도 맡아보고 골라가야 할 것인데 멀리서 지켜 보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내가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것에 있다. 남들이 달려들어 사가니, 나도 조바심이 나서 뭐라도 하나 골라야 하는 위기감. 그것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인듯 하다.


* 결혼하지 못했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길 한다.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고르는 적극적인 태도에 대한 비유였다.




살아가면서 시험점수를 잘 받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취직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과 스펙을 쌓는다. 그런데 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데에는 너무 운명에만 맡기는 도박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사회적 성공보다 정말 본인과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난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자가 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일찍 결혼이라는 그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나에게 '결혼'이라는 단어는 연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먼 미래 이야기로 느껴질 뿐이었다. '언젠가는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라고 말이다.

평생 혼자 살 것만 같았던 연예인이  늦게라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볼 때면 '결국 결혼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며 답을 찾으려 한다. 결국 각자 팔자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가끔은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부러우면서도, 본가에 갔을 때 결혼한 동생과 엄마가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그래. 내 팔자가 상팔자다.’ 하는 확신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 말하길 ‘혼자는 외롭고, 둘은 괴롭다’고 하지 않는가. 혼자일 때, 안경을 끼고 눈 뜬 아침은 잠깐의 웃픔으로 끝나지만, 둘일 때 그런 아침을 맞이하면 나에게 관심도 없다며 상대방에게 서운함을 내비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매달 엄마가 미용실에 다녀온 날이면, "어떻게 와이프 헤어 스타일 바뀐 것도 못 알아볼 수가 있냐"며 아빠에게 잔소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적정한 '때'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조카들을 보면 나의 DNA를 가진 자식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하다가, '이 세상에 소환해 놓고 혹여 내가 상처를 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어 바로 생각을 접곤한다. 그리고 이제는 마흔이 넘었으니 현실적으로 임신도 쉽지 않은 나이이다. 오늘 당장 아이를 낳아도 환갑에 스무 살이다. 내가 낳은 자식 옆에 오래 머물러 줄 수도 없다.




얼마 전, 운전면허를 갱신했다.

20대 때 땄던 운전면허의 첫 번째 갱신 때 ‘다음엔 마흔 살 때네’하며 까마득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와버렸다. 이번에 받은 면허증의 다음 갱신일은 50살 때다. 혹시 50살 때도 지금과 달라진 것이 없을까 봐 조금 두렵긴 하다. 그때도 홀로 안경을 낀 채 잠이 들지, 아니면 옆에 잠든 누군가가 끼고 잠든 안경을 벗겨주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50살의 나는 2023년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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