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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Jan 16. 2023

그놈의 돈. 돈. 돈

작년 1월, 에세이 쓰기 수업 수강을 시작으로 1년 동안 꾸준히 글을 써왔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나름 열정을 다했다. 정말 오랜만에 '나아지고 있다'라는 성장감을 느끼며 행복했다. 여름쯤엔 날씨 탓이었을까...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산만하고 영양가 없는 글을 쓴듯하다. 가을엔 몇 년간의 소망이었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북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몰아쳐서 글을 쓰며 무아지경을 경험했다. 글쓰기가 생활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영 재미가 없다.


'마흔 살쯤엔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인생의 숙제 같은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가장 덜 번거로운(?) 방법인 브런치 북 프로젝트를 목표로 열심히 달렸다. 결과는 보다시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필수로 해놔야 하는 ‘제안받기’ 옵션을 활성화해놓지 않았다는 것을 수상작 발표 일주일 전에 알았다. 


응모요건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았던 내 잘못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개인에게 공지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응모할 때 필수 설정으로 하도록 브런치 쪽에서 설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발표 일주일 전이라면 수상작들이 이미 다 결정이 되었을 시점이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 나에게 작은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래. 내 글이 별로인 것이 아니라 제안받기를 열어놓지 않아서 기회를 놓친 걸 거야.’ 하면서 나를 다독였다.  그런데 요즘은 '책 내면 뭐?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지난여름, 내가 쓴 글이 처음으로 월간지에 실리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적어도 '엉뚱한 분야에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지는 않구나'하는 확인을 받은 듯했다. 생에 처음으로 내 글이 종이에 인쇄되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돌아온 첫 대답은 “그거 돈 주는 거야?”였다.

힘이 쭉 빠졌다. 어떤 내용의 글인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얼마 후 또 힘 빠지는 말을 들었다. 당시 주말에 기획출판 관련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어서 본가에 내려가지 못한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엄마에게 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해서 책 내서 돈 벌었으면 좋겠다.”

이후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도 승인 메일을 받고 엄마에게 알려주었다. 역시 한치도 빗나가지 않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돈 벌 수 있는 거야?”


그놈의 돈. 돈. 돈.


내가 쓰는 글의 내용 따위는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한도 끝도 없이 외로워진다.

나도 안다. 나조차도 가족의 글을 선뜻 읽을 자신이 없다. 어쩌면 가족들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기 두려워한다. 하지만 영락없이 모든 종착지가 오로지 ‘돈’이라니... 




평생 군인이셨던 아버지와 주부로 집안일에만 매진하며 살아온 나의 부모는 재테크에는 그리 소질이 없다. 이성을 챙기기엔 팔랑귀여서 엉뚱한 투자로 돈을 잃기도 하고, 겁이 많아 있는 것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들에게 돈은 '밑 빠진 독의 물 붓기' 같은 영원한 결핍의 존재 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군 생활을 만기 전역하시고 운전, 시설관리일 등을 하시다가 요즘은 주유소에 다니신다. 매달 연금이 나와 생활에는 문제가 없지만 넉넉하지는 않다. 게다가 넉넉하다고 집에 그냥 있을 성격도 아니다. 


젊은이들도 쉽지 않은 주 6일 근무에 주말엔 꼬박 12시간을 일하신다. 급여는 최저시급으로 계산된다. 점심시간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고, 이 추운 겨울에 거의 밖에서 서 있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더 속이 상하는 것은 일터에 너무 과하게 '충성! 충성!'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한가하니 1시간 일찍 퇴근시켜주기에 좋아했는데 월급날 들어온 돈을 보니 한 시간 급여가 깎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는 자진해서 매일 30분 일찍 출근해서, 15분 늦게 퇴근한다. 게다가 마치 자기 주유소인 양 열심히 하신다. 남 배만 불려주는 바보 같은 성실함에 속이 상했다. 그거 누가 알아준다고. 적당히 자기 실속 챙겨가며 약아빠지게 좀 살면 안 되나? 사장에겐 그저 시급을 주고 부리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언제나 누구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지난 주말, 본가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내가 탄 고속버스가 그 주유소 앞을 지났다. 자동 세차기 앞에 늘어선 차들 옆으로 아빠가 서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넉넉하게 벌면, 아빠가 저런 취급 안 당하고 즐기면서 살게 할텐데...'

결국 나 자신을 질타한다. 




집에 다녀온 후,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글쓰기까지 영향을 미친 듯하다. 

나도 언젠가는 작가로 글밥 먹으며 살고 싶다. 건방진 포부일지는 모르지만, 글을 쓰면서 돈이 따라왔으면 좋겠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글은 외로움을 희석하는 수단이고, 있을지 모르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몇 안 되는 발전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받았던 위로들을 글로 돌려주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돈도 안 되는 거 해서 뭐해'라는 그 역겨운 사고방식이 별수 없이 내 DNA 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 착잡함. 다시 또 한도 끝도 없이 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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