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기린 Jan 26. 2023

추석엔 안 갈래.

우리 집은 큰집이다. 명절 땐 할머니와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모인다. 전날 저녁에 모여 먹고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밥 먹고 헤어진다.


작년 추석엔 코로나 이후로 몇 년 만에 모인 명절이라 그랬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화기애애했다. 추석을 앞두고 가기 싫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그래. 이런 게 가족이지'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설은 망설임 없이 고향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설 연휴가 끝난 오늘까지도 마음이 어지럽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다. 이번 설은 어린 시절의 나를 저 깊고 깊은 곳에서 끄집어냈다. 억울하고 외로운 마음을 가진 어린아이가 소환되었다. 괴로운 마음에 잠을 설쳤다.




먹을 것을 손자들 앞에만 끌어다 놓으며 권하는 할머니를 보고 잊고 있던 서운함이 떠올랐다.

'아참... 나 여자라서 푸대접받던 손녀였지'


저녁상에 올라와 있던 과메기를 먹고 있는 나를 보며 “과메기 잘 먹네~ 너 원래 이런 거 잘 안 먹잖아.”라는 작은엄마의 말에, 나는 가리는 음식이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이미지로 포지셔닝이 되어있는 건지 억울했던 미성년의 내가 떠올랐다.


평소엔 매사에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여동생이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는 세상 좋은 사람처럼 웃고 오바스런 농담을 하는 모습을 보니 가증스럽기가 이를 데 없었다. 다들 가고 나면 금세 짜증 낼꺼면서...


억울했다. 나는 평소랑 똑같았을 뿐인데, 조금 낯을 가렸던 것뿐인데, 억지로 사랑받으려 노력하지 않았을 뿐인데! 팥도 콩도 이지가지 다 편식하는 동생은 성격 좋고 사막에 떨궈놔도 살아남을 생활력 강한 사람이고, 나는 서툴고 연약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었다는 것이 되살아났다. 당황스러웠다. 그런 일로 내가 오랫동안 속상해했던 것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엄마 눈치를 보며 주눅 들어 있는 조카들의 모습을 보니 어릴 적 내 모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설쳤다.

'저 순수한 것들이 오늘은 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고것들이 지금은 약한 존재라 다 참고 있는 거다.'

슬퍼서 팔 끝이 저렸다. 엄마가 흘겨보는 눈빛 하나에도 조마조마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명절. 그거 일 년에 2번, 한번 만날 때 겨우 24시간도 안 된다.

'9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를 앞으로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갔다. 나중에 후회하기 싫으니까... 아빠가 가족이 모였을 때 행복해 보여서, 엄마가 친척들 모임에서 자식들이 오는 걸 든든해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갔다.

 

그런데 내 나이를 생각하지 못했다. 41살. 어른들 생각으로는 결혼해서 명절에 시댁에 가 있어야 할 내가 매번 빠지지 않고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심지어 조금 딱해 보이지 않았을까? 미뤄놓은 일감처럼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마치 버스를 놓쳐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방인 같은 존재. 설 연휴 내내 내가 그런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엔 누구나 상처받은 아이가 있다. 용서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다. 결국 나도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상처 주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내가 결혼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

추석땐 못 갈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그놈의 돈. 돈. 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