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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Dec 31. 2022

2022년 마지막 날, 치과에 갔다.

2022년의 마지막 날이다.

여유 있게 슬렁슬렁 보내고 싶은 날이지만, 오전부터 부담스러운 스케줄이 있었다.

치과에 가는 일. 요즘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갈 수 있는 시간이 토요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도, 올해의 마지막 날도 치과라니... 마음에 여유가 없는 12월이었다.




치과는 가도 가도 적응이 안 된다. 출발하면서 영혼은 집에 두고 나와야 한다.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래전 치료받았던 치아 2개가 시리고 씹기가 힘들어 방문했더니 크라운으로 교체하게 되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예전에 되어있던 아말감과 레진을 뜯어내기 위해 마취를 하고 갈아내고... 50분을 긴장하며 누워있었더니 끝나고 나면 파김치가 되었다. 가뜩이나 턱관절이 좋지 않은데 계속 입을 벌리고 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갈아낼 때 뿌리는 물이 목구멍에 고여 넘어갈 것 같을 때도 곤욕이었다.


다행히 그런 힘겨운 치료들은 다 끝났다. 오늘은 그동안 끼워놓았던 임시치아를 떼고, 크라운을 끼우는 날이라 금방 끝났다. 이 치과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다른 치과에서도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크라운을 임시로 붙여놓고 일주일 동안 사용해본 후 괜찮으면 그제야 접착제로 고정한다고 했다.


지난주, 오른쪽 어금니의 임시치아를 제거하고 크라운을 끼우니 옆에 이가 눌리는 것 같고 이질감이 들었다. 비집고 들어온 가짜 이가 입을 다물 때도 왠지 교합이 맞지 않는 것 같고, 이전보다 더 시린 것 같기도 했다. 온 신경이 그 어금니에만 쏠렸다. 내 입속에 마치 그 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삼일, 사일… 일주일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치 원래 내 입 안에 있었던 것처럼 그 새로운 친구에 대해 잊게 되었다. 아마도 오늘 끼운 왼쪽 어금니도 이와 같은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내일부터는 2023년이 시작된다. 가짜 치아도 일주일이면 내 몸처럼 느껴지듯이 생소한 새해도 2주 정도만 지나면 새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간의 수평선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며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요즘 한동안 집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 오늘은 올해 마지막 날이니 자식 노릇은 해야 한다. 치과에 다녀온 이야기, 근래 회사 이야기 등을 조금 나누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서로 나누며 전화를 끊었다.

‘아… 역시 난 엄마랑 안 맞아.’

가족은 가끔 보아야 돈독하다. 그렇게 자식 노릇을 하고, 동생을 불러 연남동에서 올해의 마지막 만찬을 함께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다.




2022년을 시작하며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 보기’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보이는 길을 따라 흘러가 보았다.

1~2월 에세이 수업을 시작으로, 우연히 글쓰기 모임도 참여하게 되면서 2주에 한 편씩 글을 썼다. 단행본에 짧은 글도 실리고, 올해의 버킷리스트였던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10월엔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퇴근하고 매일 책상 앞에서 보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써놓은 글이 별로 없어서 일주일에 5편의 글을 썼을 때 솔직히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하고 뿌듯했다. 비록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조금 덜게 되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포털 메인이나 브런치 메인에 노출되어 생각지도 못한 조회수와 좋아요, 댓글과 늘어가는 구독자 수를 보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의 글에 머물렀던 모든 분들께 작은 공감, 미미한 위로라도 전해드렸길 바라며, 이 글을 발행하고 맘 편히 2023년으로 향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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