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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r 26. 2023

인연의 유통기한

항상 셋이 만났다가 이제는 둘이 보게 된 오랜 인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느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생각했다.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나의 인간관계는 좁고 깊은 편이다. 현재 회사 동료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10년 이상 된 오랜 지인들이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 가끔 만나는 지인도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는 관계도 있다.


나는 지인들에게 무방비한 편이다. 사적인 일이나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사실은 ‘~한 척’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대도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대하면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이 닫혀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지와는 상관이 없다. 나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알게 됐을 때이다. 또는 나는 굉장히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확인했을 때...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큰일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의 크기를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올해로 20년이 된 친구와 이야기하다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비슷할 때 힘들고, 비슷할 때 풀렸기 때문이라고... 때문에 질투나 자격지심을 부리는 위기 없이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언젠가 다른 인생 그래프로 살게 되면 멀어질 수도 있겠구나...'


오래가는 인연에는 분명 사적 영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거리와 예의가 있어야 한다. 가까운 사이에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 말과 행동 같은 것들 말이다. 상대가 그 선을 넘으면 마음의 문은 점점 닫혀버린다. 내 마음은 그렇게 마음이 닫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깨기 싫어서, 과거의 좋은 추억들 때문에 어떻게든 지키려 했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문제 되지 않아. 내가 예민한 걸꺼야...' 자신을 가스라이팅하며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지 깨달아 버렸다. 마주할 때마다 소모되는 마음. 그리고 더 추가되는 비수들. 이미 한번 금이 간 마음은 다시 투명하게 돌아오기 어려웠다. 가까이할수록 더욱 왜곡되고 돌이킬 수 없어 작은 틈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인연이라는 실은 한쪽에서 놓아버리면 부질없고 힘없이 끊어져 버린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여전히 오래 지키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다른 인생 그래프로 살게 되어 멀어지든, 나와는 다른 마음의 크기를 확인하게 되든, 수단으로 전락해 끝나버리든... 일단 지금은 나의 고맙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들이 나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도록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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