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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r 19. 2023

꽃기린

작년 생일에 꽃기린 화분을 선물 받았다. 나의 별명이 기린이기 때문에 친구가 고른 센스있는 선물이었다. 꽃이 솟아오른 모양이 기린을 닮았다고 하여 꽃기린이라 이름 붙었다고 하는데, 가지에는 가시가 있지만 빨갛고 작은 꽃이 피어있었다. 


가지마다 솟아있는 가시가 예수의 면류관을 떠올리게 해서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볼 때마다 방황했던 지난 시간과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훌륭한 생일 선물이었다. 겨울에도 따뜻하게만 잘 관리하면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책상 옆 잘 보이는 곳에 꽃기린 화분을 두었다.




처음에는 분명 싱싱하고 예쁜 붉은 꽃이 조롱조롱 피어있었건만, 나에게 오자마자 꽃잎과 이파리가 마르더니 기어코 마른 꽃과 이파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이파리 4장만 남고 앙상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집이 건조해서 그런가 해서 물을 더 주면 과습으로 그나마 남은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물러져 버렸다. 검색해보니 꽃기린을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식물이라고 했다. 


뜨거웠던 여름, 잎이 타죽는 건 아닐까 하면서도 최후의 방법으로 테라스에 화분을 내다 놓았다. 처음에는 햇빛에 잎이 타버릴까 봐 늦은 오후에만 밖에 내놓다가 비가 자주 오기에 밖에 계속 놔둬 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걱정과는 달리 가지에 파릇한 잎들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다시 붉은 꽃들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기린을 보며 삶도 그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마다 가진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두려움을 빌미로 그늘 안에 갇혀 타고난 능력을 확인할 기회조차 박탈되어 버리기도 한다. 부모의 과잉보호나 자신의 회피로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인지도 확인하지 못 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빨갛고 예쁜 꽃을 사시사철 피울 수 있는 멋진 나를, 햇빛을 가득 품으면 꽃을 터트릴 나를 그늘 안에서 4장의 이파리만으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르게는 환경상 햇빛을 쬘 수 없는 환경에 놓여 꽃을 피우고 싶어도 피울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서향집에 살고 있다. 저녁에만 해가 길게 들어온다. 때문에 나의 꽃기린은 이 집에서 한 번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제 날이 따뜻해졌으니 어떻게든 빛을 쪼여서 붉은 꽃을 다시 봐야겠다. 꽃기린은 그런 존재이니까. 꽃기린은 붉은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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