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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r 12. 2023

3년 만의 외출

여동생은 27살에 결혼했다. 올해로 결혼 12년 차.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두 딸을 가졌다. 그런 동생이 3년 만에 서울에 혼자 놀러 왔다. 




나와 동생은 2살 터울로 어릴 때 별 다툼없이 친구처럼 지냈다. 그런 동생이 일찍 시집을 가고 나니 둘이 여행 한 번 못 가본 것이 내내 아쉬움이 남았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서울에 놀러 왔을 때가 동생의 첫 외출이었다. 아이들을 떼놓고 혼자인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고 했다. 1박 2일, 겨우 24시간 남짓의 짧은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기 직전 터미널 앞 쌀국숫집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 동생의 어두운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처녀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인데,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만 하잖아.” 

동생은 시선을 떨군 채 쌀국수를 뒤적거렸다. 때마침 걸려 온 시아버지의 전화는 이름과 취향은 흐릿해진 채 엄마, 아내, 며느리로 돌아가야 하는 알람이었다. 동생은 굳은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히며 버스에 올라탔다.


그로부터 이번이 동생의 세 번째 방문인데 그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10년 동안 전업주부로만 살아오다 작년에 취직을 했다. 어린이집 특별활동 선생님이라고 했다. 시급은 조금 높은 편이었지만 매주 바뀌는 커리큘럼을 익히고, 교구들을 가지고 어린이집들을 돌아다니려면 차도 필요했기 때문에 들어가는 공에 비하면 그리 후한 급여는 아닌 듯했다. 


오랜만에 용기를 냈지만, 많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일하랴, 아이들 챙기랴, 혹시 애들을 챙기지 못하는 시간에 친정에 부탁하랴... 매일매일이 쏜살같이 지나고 살도 훅 빠졌다. 마침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돌봄교실까지 맡겨야 하니 아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쌓였던 모양이다. 시작한 첫 달 부터 못 할 것 같다,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만, 동생은 1년을 채우고 얼마 전 퇴사했다.


“워킹맘들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어떻게 애들도 챙기고 일도 하는지… 1년 동안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어. 다시 내가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기뻤지만 육아와 일을 동시에 병행한다는 것이 너무도 힘든 일이더라고. 그만두니까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해. 이제는 부담이 없으니까 좋은데, 다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아 그건 두려워.”


그리고 결혼생활을 하며 살림과 육아에 대해 소홀한 남편에게 많은 서운함이 있었는데, 남편도 밖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해하는 시간도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잠자리에 누워 어릴 때처럼 수다를 떨다 새벽 5시가 되어 겨우 잠에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터미널 지하상가에 들렀다. 동생은 자기 것은 머리핀 하나만 샀고, 아이들 옷과 간식들을 쇼핑한 후 내려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언니 잘 있어~ 또 놀러 올게”

밝게 손을 흔들고 버스에 올라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 처음 왔을 때 그 우울하고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마음이 놓였다. 검은 고무줄로 질끈 묶었던 머리는 새로 산 예쁜 분홍색 리본 머리핀으로 달고, 손에는 아이들 선물이 든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리본 머리핀을 한 동생은 여전히 어릴 적 동생의 모습인데, 아이들 선물을 바리바리 들고 가는 손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3년 만에 동생과 데이트할 생각에 2주 전부터 들떠 있었고, 나름 맛집과 카페를 데려갔는데 그리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지 못한 것 같았다. 게다가 동생을 위한 선물을 사주지 못해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김미경의 마흔 수업’을 읽고 있다. 싱글인 나보다는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동생이 더 공감 가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았다. 딱 지금 필요한 책인 것 같아 책을 선물했다. 돌아보니 동생에게 책 선물은 처음인데 나의 예상보다 훨씬 좋아했다. 동생에게 선물을 사주지 못하고 내려보냈던 아쉬운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책에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며, 나는 또 동생의 외출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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