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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Apr 02. 2023

수상한 그녀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 지친 퇴근길. 드디어 횡단보도만 건너면 집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한 여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서울식물원 어떻게 가요?”

다짜고짜 길을 물어왔다. “저기요”라든지, “죄송한데”라는 말도 없이 말이다. 너무 깜짝 놀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서울식물원이라면 집 근처라서 평소에도 자주 산책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물으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어… 이쪽 길로 가면 되는데…” 

나는 대답을 하며 그녀를 살폈다. 긴 생머리에 흰색 후드 점퍼를 입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혹시나 소위 ‘도를 아십니까’는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길을 알려주려던 나에게 ‘직장인이냐, 조상덕이 많다‘는 둥 엉뚱한 말을 이어가 그냥 지나쳐버렸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먼저 다가오는 낯선 사람이 의도가 없던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그녀는 한쪽 손에 버젓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지도 앱을 열어 검색만 하면 손쉽게 알 수 있는 젊은 친구가 길을 물어보니 이만저만 수상한 것이 아니었다.


”근데 앱으로 검색해보면 되지 않아요?”

나도 모르게 경계하는 눈초리로 단호하게 되물었다. 그녀는 검은 화면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멋쩍게 말했다.

“아, 배터리가 떨어져서요…”


길 알려주는 것이 뭐라고 까탈스럽게 확인 절차까지 거친 나 자신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제야 경계의 빗장을 풀었다. 

“뭐라고 알려드려야 되지... 저기 저 길로 쭉 따라가다 보면 건물이 보일 거예요.”

“네. 가다가 다시 물어보죠 뭐.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이 몰려왔다. 스마트폰은 꺼졌고, 길도 잃은 사람을 더 심란하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길을 잘못 알려준 것은 아닐지 나의 대답을 되새기며 집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왜 갑자기 끼어들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지만, 그냥 지나쳐 가버려 선택한 방법인 듯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투도 벗지 않고 창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미 어두워 질대로 어두워져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다. 듬성듬성 켜진 가로등 사이의 휑한 길을 훑어보며 그녀가 부디 헤매지 않고 무사히 식물원에 도착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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