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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Apr 09. 2023

더 나이 들면 얼마나 더 심심할까?

얼마 전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각에 전화가 울렸다. 아빠였다. 야심한 시각에 아빠의 전화라니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밤에 울리는 전화는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한다.


“여보세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11시까지 일하는 날인데 손님이 없어서 전화 한번 해봤지. 잘 지내고 있지?”


야간근무를 하시다가 한가한 틈에 안부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설 이후에 집에 내려가지 않고 연락도 안 했더니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그렇져뭐...”

“요즘 40대 혼인율이 20대를 앞섰다더라?”

앞뒤 맥락도 없이 갑자기 아빠가 던진 말이었다.


“아빠, 그 얘기 하려고 전화했구만~! 결혼 얘기하려구!”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20대는 취직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요. 30대에 겨우 자리 잡고 40대나 돼야 하는 거지 뭐. 근데 차라리 취직이 쉽지, 결혼이 뭐 맘대로 되나? 그리고 아빠 딸 인기 없어~ 남자들이랑 손잡고 살사를 몇 년을 췄어도 거기서 썸씽 한번이 없었구만… ”

”그러게 말이야…“


나의 푸념에 돌아온 아빠의 ‘그러게 말이야’라는 말은 왠지 나를 더 무매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생각한다.

'더 나이 들면 얼마나 더 심심할까?'


정신을 차려보니 4월. 1분기가 끝났다. 1월엔 설 명절이라도 있었지만, 2월에는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인상적인 일이 없었다. 퇴근과 주말을 기다리는 평일과 아쉬운 주말. 만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주말 스케줄이라고는 간혹 친구를 만나거나 본가에 내려갔다 오는 것뿐. 약속도 없는 날엔 늘어져 있다가 금세 하루가 가버린다.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10년 후에도 이렇게 살 것이 뻔해 보인다. 


결혼한 친구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매 순간 수많은 미션들이 생긴다. 배우자와 자녀, 양가 부모님과 친척 관련한 일들 말이다. 하지만 싱글의 삶은 단순하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가뜩이나 내성적이고, 실행에 주저함이 많고, 좁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삶을 재밌게 만들지 않으면 나의 40대는 손에 꼽힐 기억만으로 채워질지 모른다. 매일 같은 사람과 같은 길, 같은 장소. 새로움이 너무 부족하다. 시간이 갈수록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질 것이다. 내 성격에 혼자 살면 이토록 지루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왜 아무도 안 알려준 것일까?




집주변 공원에 튤립이 만발했다기에 산책하러 나갔다. 일요일 오후의 공원엔 거의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었다. 튤립 사이에 아기를 앉혀놓고 사진을 찍는 엄마, 반려견 산책을 위해 나온 사람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쌍둥이 아들들에게 비눗방울을 불어주는 부모. 조부모까지 3대가 나들이를 온 대가족. 솜사탕 장사 앞에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양 갈래머리 아이. 다들 언제 저렇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을까? 내한 몸 건사하기 힘든데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만 봐도 용기가 대단한 사람들로 보였다.


평생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이토록 건조하고 공허한 것이라니... 나는 항상 늦게 깨닫는다. 혼자 재밌게 살기 위해서는 취미 부자가 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일상이 건조하니 요즘 쓰는 글도 건조하기 짝이 없다. 미루고 있던 소설 수업에 등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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