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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Apr 16. 2023

소고기미역국

오늘은 나의 41살 생일이다. 이제 만 나이로도 마흔이 되었다. 


금요일에 휴가를 내어 집에 내려갔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었다. 어딘가로 여행을 갈까도 싶었지만 혼자는 싫었다. 마흔 살이 된 딸내미를 위해 엄마는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고기, 잡채, 전,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 그리고 소고기미역국. 사 먹는 밥이 지긋지긋했는데 엄마가 해준 밥이 최고다.


“고기 제일 많이 들어간 게 네 거야”라고 하시며 내 앞에 놓인 생일 미역국. 참기름이 부서지듯 떠 있는 누런 국물에 검푸른 미역, 소고기 기름에서 우러난 구수한 냄새에 한 수저 듬뿍 퍼 입안에 담았다. 뜨끈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이 목구멍을 뻥 뚫어주며 식도를 내려갔다. 


“캬~~” 

“미역국 맛 어때?”

“맛있어요!”

“역시 고기를 듬뿍 넣어야 맛있다니까!”


엄마가 왜 자꾸 고기 이야기를 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몇 년 전 일 때문일 것이다.




4년 전 오늘, 나는 4번째 백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긴 공백 끝에 들어갔던 회사는 1년 만에 자리가 사라지게 되었고 결국 또 백수가 된 것이다. 그간 퇴사와 긴 공백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가 제대로 백수 탈출한 줄 알았건만, 바로 이직도 못하고 갯벌에 빠진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때도 집에 내려가 가족들과 생일을 같이 보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기프티콘으로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동생들과 빵집에 갔다. 제법 가격이 나가는 기프티콘을 받았는데 동생이 케이크는 작은 것을 사고 남은 돈으로 다른 빵들을 사 가자고 했다. 겉으로 이야기는 안 했지만 섭섭했다. 케이크와 갖가지 빵들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보며 제대로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존감은 이미 깊은 바닥까지 떨어져 있어서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흔들렸다. 케이크와 빵을 사 들고 집에 들어왔을 때 부엌에 있던 엄마가 말했다.

“소고기 사다 놨던 게 다 떨어졌네. 이번 미역국엔 고기 안 넣고 끓인다~”


2~3일에 한 번씩 조카들이 오기 때문에, 집에 미역국이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어린아이들이니 미역국이 단골 메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미역국에 소고기를 넣고 끓인다. 그런데 나는 생일 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도 넣지 않고 미역만 들은 미역국을 끓여준다고? 나이 먹고 돈도 못 번다고 대접도 안 해주는 건가 싶어 서러움이 몰려왔다.


“평소에도 고기 넣고 끓이면서 왜 안 넣고 끓여줘?”

내 말을 들은 엄마의 얼굴에서 아차 싶은 표정을 보았다. 잠시 후 엄마는 부랴부랴 집 앞 마트에 가서 소고기를 사 와서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엄마가 그날을 기억하고 있기에 자꾸 고기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솥에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볶으며 두고두고 곱씹었을 것이다. 고기가 가득 든 미역국을 먹으며 그때의 서운함이 고마움으로 바뀌었다기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다. 마흔 살이나 된 딸이 엄마에게 생일상을 받아먹으니 그것처럼 죄인이 없었다. 내가 태어난 날 고생한 건 엄만데 40년 후 오늘도 생일상 차리느라 고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카와 제부까지 온 가족이 다 모여 축하해주었지만, 케이크 앞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예전과 다르게 민망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년부터는 여러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혼자 조용히 보내야겠다. 마음만 고맙게 받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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