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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y 07. 2023

시큼 알싸한 마지막 선물

서울에 혼자 떨어져 살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보낸 택배를 열어볼 때면 피식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치약, 칫솔, 비누는 물론이고 빈틈까지 속속들이 라면과 휴지, 과일로 틈도 없이 채워져 있었다. 사실 집 앞 슈퍼에만 가도 손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다. 타지에서 사는 딸내미가 한 푼이라도 아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소한 것까지 다 챙겨 보내신 것 일게다. 


그중 항상 빠지지 않고 보내주시는 반찬이 있다. 고추장아찌다. 한입 베어 물면 짭조름하고 시큼하면서 알싸한 매콤함이 혀를 파고든다. 즐겨 먹는 반찬은 아니었지만, 입맛이 없을 때는 고추장아찌 2개 면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운다.


“엄마, 고추장아찌 아직 많이 남았는데 뭐 하러 또 보냈어~”

“맛있는데 왜 안 먹어~ 밥 먹을 때마다 꺼내놓고 먹어”


냉장고 안쪽에 지난번에 보낸 장아찌가 아직 그대로 있다. 이 고추장아찌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집에 놀러 오시는 손님들이 먹어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너도나도 싸달라고 요청하는 엄마의 자랑할 만한 대표 반찬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엄마에게 왜 더 특별한지 알고 있다.




10년 전 어느 오후, 엄마는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고 바닥에 철퍼덕 앉아 빨간 뚜껑이 덮인 플라스틱 통을 바라보고 계셨다.


“엄마, 거기 앉아서 뭐 해?”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그 통에는 간장에 잠긴 고추들이 담겨있었다. 고추장아찌였다.


“아프다면서 뭘 그렇게 해서 주느라고……”

엄마는 목이 메여 말끝을 흐렸다. 그것은 큰이모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7남매 중 여섯째인 엄마는 큰이모와 20살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야말로 엄마 같은 언니였다. 내 기억 속의 큰이모는 항상 수줍은 듯 인자한 웃음을 짓고 계시는 분이었다. 큰 소리를 내어 말씀하시거나,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외갓집에 온 가족이 모여 왁자지껄한 와중에도 조용히 미소를 짓고 흐뭇하게 바라보시다 가끔 한마디씩 거들기만 하시는 분이었다.


아흔이 넘은 외할머니께서 거동이 불편하시게 되자 요양원으로 모셨다. 동시에 엄마에게 친정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큰이모가 대신 했다. 가끔 이모 댁에 들르면 친정엄마처럼 있는 것, 없는 것 다 꺼내어 바리바리 싸주셨다. 


어느 날, 큰이모가 위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검진에서 위에 이상소견이 있다고 들으셨는데 미루고 미루다 병원에 가니 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안 되어 이모는 세상을 떠나셨다. 이모는 본인의 미래를 직감하셨는지 모른다. 증상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기 전, 고추장아찌를 담가 이모와 삼촌들에게 나눠주신 것이다. 


6명의 동생에게 나눠줄 만큼 많은 고추를 씻고, 간이 잘 배도록 바늘로 하나하나 옆구리에 구멍을 내셨을 것이다. 식초를 넣은 간장을 끓이고는 통에 나눠 담은 고추에 부으셨을 것이다. 유독 맛이 잘든 고추장아찌는 이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한동안 엄마를 위로해 주었다.




엄마가 보내준 반찬을 다 꺼내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밥을 몇 술 뜨다가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이모가 유서 같은 마음으로 장아찌를 만들지는 않으셨겠구나’ 하는… 그저 언제나 밥 한 끼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언니의 마음. 그런 엄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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