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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y 14. 2023

엄마, 이불이 다 꽃무늬야


“너 이불도 바꿔주고 반찬도 갖다주러 가야되는데...”

“아참, 엄마! 베갯잇이랑 요, 패드, 이불이 어쩜 다 꽃무늬야~ 남자 생겨도 집에도 못 데리고 오겠어~”

엄마에게 농담을 했다. 말을 던져놓고 보니 ‘엄마 앞에서 별 얘기를 다 하네’ 하고 한소리들을 줄 알았다.


“어머. 생각해 보니 진짜 그렇네.”

엄마는 너무도 진지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무언가 깨달았다는 느낌이었다.


몇 주 후, 집에 내려갔을 때 우리 집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늬가 하나도 없는 새 이불이 있었다. 한 면은 연한 회색, 다른 한 면은 파스텔톤 하늘색.

“요즘 사람들은 저렇게 무늬 없는 거 많이 덮는다면서?”

분명 저번 내 이야기를 듣고 고른 것이 분명했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면서 사연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종일 틀어놓는다. 고부갈등, 이혼, 바람, 배신…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다.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종일 쩌렁쩌렁 틀어놓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집에 내려가 거실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데, 그 오디오 사연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남편이 바람피워서 상간녀와 삼자대면한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내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휴~ 역시 내 팔자가 상팔자지~~”

내 말을 듣은 엄마는 오디오 볼륨을 줄였다. 내가 그런 걸 듣고 진짜 결혼 안 해야겠다 마음을 굳힐까 봐 걱정되나 보다.




“능력 있으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어.”

예전엔 엄마가 분명 그렇게 말했었는데, 요즘에는 주변에 누가 소개 시켜주는 사람도 없냐며 묻는다. 정말로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안 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나 보다.


“언제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며?”

“내가 그렇게 말해서 안 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뒤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꾹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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