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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y 21. 2023

옷 좀 빨아 입고 다녀

5월인데 날씨는 이미 여름이다. 휙 지나쳐 가는 사람에게 땀에 젖은 쉰내가 날아온다. 나에게도 저런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닐지 신경 쓰인다. 나는 사계절 내내 데오도란트를 쓴다. 하루 입은 옷은 바로 세탁기 행이다. 빨래도 더 신경 써서 해야 한다. 실내 건조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쓴다. 요즘은 향수도 뿌려본다. 날씨가 더워지니 신경 쓸 것들이 많아진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과거의 몇 가지 일 때문이다. 20대 후반 웹에이전시에 다닐 때였다. 매일 지겹도록 새벽 퇴근이 이어졌다. 2시에 퇴근해 집에 가서 잠만 자고 출근이다. 당연히 일상을 돌볼 시간은 없었다. 아침마다 좀비 같은 몸을 일으켜 겨우 출근해서 에너지 드링크로 아침을 시작했다.


빨래는 쌓여갔고 어느 아침엔 입고 갈 옷이 하나도 없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늦잠까지 잔 마당이니 정말 최악이었다. 결국 쌓여있던 빨래 더미의 옷 중에 그나마 상태가 제일 양호한 옷으로 골라 입고 집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쿰쿰한 냄새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것으로 신경이 쓰일 생각을 하니 더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날도 바빴다. 갑자기 옆 팀에 일손이 부족해서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프로모션 디자인 페이지였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2~3시간 안에 그 일을 해결해야 했다. 정신없이 디자인에 몰두하고 옆 팀 팀장님이 컨펌을 해주러 내 자리로 왔다. 시안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한마디를 보탰다.

“옷 좀 빨아 입고 다녀. 농담이야~”

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하루, 빨래도 은행도 병원도 가지 못하는 상황. 좀비 같은 몰골로 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는 내 삶이 너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여분을 항상 확인했다.





몇 년 후,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을 때 얼굴이 붉어질 일이 또 한 번 있었다. 자주 입던 셔츠를 입고 출근을 했다. 한참 습기가 많은 계절이라 제대로 마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옷이 오래되어서 냄새가 나는 것인지 덜 마른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신경이 쓰이니 긴장이 되었고, 그것 때문에 땀이 나게 되니 옷에서 금방 냄새가 났다. 어떻게든 행동반경을 줄이며 최대한 자리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옆자리 직원이었다. 자리도 붙어 앉아서 가까운데, 평소에 계약직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여러 번 해서 달갑지 않은 정규직 사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갑자기 냄새를 맡듯 킁킁댔다. 나는 숨바꼭질하는 꼬마처럼 얼어붙었다. 혹시 알아차린 걸까?


몇 차례 그러다 말길래 안심하고 일을 하고 있던 그때, 그는 일어나 어딘가로 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어디서 이상한 냄새 안 나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닌 듯 가던 길을 갔다. 나에게 눈치를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퇴근 시간까지는 길기만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셔츠를 벗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무시를 당하다못해 그놈에게 나는 냄새 나는 계약직 직원이 됐을까?’ 생각하니 분노마저 치솟았다.




원룸이라 그런지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식초, 과탄산소다도 넣어보고 세탁조 청소도 자주 하는데도 그 불쾌한 묵은 냄새는 해결이 잘 안된다. 그렇다고 섬유유연제를 더 과하게 넣었다가는 더 좋지 못한 결과를 낼 수 있다. 요즘은 다들 건조기를 쓴다던데 우리 집 세탁기엔 없는 기능이다. 이렇게 미션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 건조기 있는 집에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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