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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y 28. 2023

오늘 뭐 했어?

주말에 대체 공휴일까지 3일간 이어지는 꿀 연휴다. 하지만 주말을 귀신같이 알고 비가 오는 건 뭐람? 별다른 계획이 없으니 본가에 내려갈까 했지만, 비도 온다고 하고 몸도 피곤해 예매했던 차표를 취소했다. 무엇보다 연휴를 이용해 요즘 몸과 마음을 장악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털어내고 싶었다.




요즘 나는 굉장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근 지하철을 타면서부터도 그렇다. 길게 늘어선 줄에 새치기하는 사람 보면 화가 나고, 나를 치고 지나가는 것도 심하게 짜증이 났다. 

'앞으로 갈 곳도 없는데 왜 밀고 난리야.'

'찝찝하게 왜 이렇게 붙어!'

'아! 제발 좀 내리고 타라고!!!' 

나의 미간은 찌푸려져 내 천 자를 긋고, 가자미 눈을 흘기며 잔뜩 날이 세우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어떤가? 우리 사무실에는 창문이 없다. 큰 공간을 가벽으로 나눠서 만든 공간이기에 좁기도 하고 창문도 없는데 천장에 환기구까지도 없는 곳이다. 출근하면 문을 활짝 열어서 밤새 묵은 공기를 내보내고 환기 좀 시키고 싶은데,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한 동료가 자꾸 문을 닫아버린다. ‘일부러’ 열어놓은 거라고 했는데도 ‘일부러’ 문을 닫는 사람과 암묵적인 실랑이를 해야만 했다. 탕비실 냉장고는 누군가 쾅 닫고 가버려 자꾸만 열려있어서 화가 나고, 우리 사무실 수세미를 누군가 몰래 써서 화가 나고, 업무요청 메일엔 내용이 확실치도 않은 어이없는 PPT에 필요한 파일도 첨부하지 않아서 화가 나고… 온통 화나는 일투성이였다.


‘아, 정말 나는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이번 주말은 인큐베이터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게 있어 보자.’

토요일. 늘어지게 실컷 늦잠을 자려고 했다. 그런데 9시 반에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유튜브를 틀어놓고 게임을 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추천해 준 영상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자기 암시 내용이었다. ‘그동안 온통 부정적인 것만 끌어당기고 있었구나’하며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차분하게 나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저녁에 생각지 못한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나는 받자마자 대뜸 왜 했냐고 물었다.

“그냥 했지. 서울도 비 오냐? 오늘은 뭐 했어?”


나는 아빠가 오늘 뭐 했냐고 묻는 것이 너무너무 싫다. 나는 일주일이고 집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고, 가만히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MBTI ‘I’의 사람이다. 하지만 아빠는 하루도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아빠 눈에는 종일 집에 있었을 내가 한심했을 것이다.




몇 년 전 백수 시절, 밤낮이 바뀐 채 무기력하게 집에 홀로 처박혀 있을 때, 나는 온몸으로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아침 7시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10시쯤 아빠는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직도 자고 있냐? 정신 차려.”


‘정신차려????’ 

정신차리라는 말은 나를 저기 우주에 홀로 부유하는 것처럼 외롭게 만들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든 힘을 내보려고 안간힘 쓰고 있는데... 이 세상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았다.


그해 여름, 아빠는 라이딩을 나가셨다가 자전거가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셨다. 다행히 골절은 없었지만, 얼굴, 팔, 다리 여러 곳에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어 일주일 정도 병원 신세를 지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자궁에 꽤 큰 용종이 있어서 부정 출혈로 힘든 상황이었다. 출혈은 생리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쏟아지는 코피가 24시간 지속되는 것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수술 날짜는 잡혀 있었다. 병원에서는 호르몬제를 처방해 주는 것 빼고는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계속 하혈하니 척추뼈가 마치 며칠 고아 낸 사골처럼 텅텅 비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걸을 때도 머리가 저리며 어지러웠다.


입원한 병원에 필요한 것을 갖다주러 갔을 때 아빠가 물었다. 

“너는 좀 어때?” 

“하혈이 안 멈춰서 허리도 아프고 어지러워요.”

“계속 집에 있으니까 그렇지. 밖에 나와서 바람 좀 쐐”

하혈을 하면 오히려 집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빠 머릿속에 온통 내가 밖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가 야속했다.




전화기 너머 아빠의 ‘오늘은 뭐 했어?’라는 물음에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떨어지는 음료수처럼 예전의 기억들이 소환됐다. 

"집에만 있었어? 밖에도 좀 나가고 그래"

가슴이 답답해져 퉁명스럽게 말했다.

“비도 오고 피곤해서 집에 있었지. 내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집에 있고 싶으면 집에 있을 거고. 내 맘대로 할 거예요.”

겨우 침전했던 마음이 휘저어지며 다시 또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마흔 살도 넘어서 중2병 걸린 사춘기 아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걱정되어서 전화하신 건데 왜 그렇게 퉁명스럽게 굴었을까? 밖에 좀 나가라고 하면 ‘네~’라고 하고 내 맘대로 하면 그만인 것을...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마음이 좋지않다. 그러면서 종일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나 오늘 뭐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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