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기린 Jun 04. 2023

새벽에 경보가 울렸다.

가끔 잠을 청하려 누워있다보면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자고 있다가 갑자기 경보가 울리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것은 전쟁, 지진, 화재같이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천재지변일 것이다.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도 할 수 없이 당황스러운 일이 깜빡이도 없이 훅하고 끼어들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것. 그것은 불행의 알람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 그 일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그 일이.




7시쯤 일어나는 나는 한참 잠에 취해 있었다. 아니 그마저도 인지하지 못하고 숙면에 들어있던 시간. 갑자기 삑! 삑!! 삑!!!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에 혼비백산해 벌떡 일어났다. 소리에 놀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재난 문자를 봤다. 대피를 준비하란다. ‘대피?? 지진이 났나?’ 네이버 앱을 바로 열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이 끊겼다고?’ 순간 내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 결국은 그렇게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결국… 일어났구나. 다음 앱을 열었다. 다행히 다음은 연결이 되었다. 속보로 북이 남쪽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는 헤드라인을 봤다. 무언가가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열려있던 창문을 닫았다. 


‘아…지난 주말에 집에 내려갔다 올걸… 저번에 아빠가 전화했을 때 왜 그렇게 퉁명스럽게 받았을까?’

부모님이 생각났고, 후회스러운 기억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근데 지하 주차장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나은가 고민했다. 


일단 TV를 켜 뉴스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의아했다. 속보로 북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는 자막이 크게 떠 있었지만, 요란하게 울렸던 알람과는 다르게 앵커는 평소처럼 다른 뉴스들을 이어가고 있었고, 일기예보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제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은 오발령이라는 헤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상상이 현실화 되었던 그날 아침은 마음속 깊이 불안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나에게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5년 전쯤, 빌라 원룸에 살 때 일이다. 한 층에 5호실 정도까지 있었던 9층짜리 건물이었다. 나는 9층 가장 구석 집에 살았다. 고요한 새벽, 갑자기 건물이 진동할 정도로 요란하게 잠을 깨우는 경보 벨이 울렸다.

“에에에~~~엥~~~~ 화재경보! 화재경보! 신속히 계단을 이용해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재경보! 화재경보!”

그 집에 수년을 살았지만, 집 천장에 있는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온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나는 혼비백산해서 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윗옷만 걸치고, 잠옷 바람으로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서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일단 복도에는 별일은 없어 보였다. 같은 층에 살고 있는 남자가 복도 창문을 기웃기웃 내다보며 대피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이용해 1층까지 내려갔다. 몇 년을 살면서 그 건물 계단을 내려가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건물밖엔 사람들이 대피해 있었다. 이 건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두근대는 심장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처럼 잠옷 바람에 핸드폰만 챙겨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당장 회사에 가도 될 정도로 옷을 다 챙겨입고 백팩까지 메고 나온 사람, 이동장 가방에 고양이와 함께 나온 사람. 여러 부류가 있었다. 곧이어 소방차가 왔고, 집주인도 뛰어왔다. 다행히 오작동이라고 했다. 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로부터 몇 주도 지나지 않아 화재경보가 또 울렸다. 이번엔 토요일 아침 7시. 주말 꿀잠에 취해있을 때였다.

오작동인 것 같긴 하지만, 일단 대피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지난번과 동일하게 했다. 이것도 한번 경험해 본 것이라고 지난번보다는 침착했다. 이번에도 오작동이었다. 입주민들은 짜증을 내며 따졌고, 주인은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작은 원룸이다 보니 누군가 집안에서 담배를 피웠거나, 방에서 뜨거운 것을 끓이다가 온도 감지가 되어 오작동한 것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던가? 나는 가끔 잠이 들 때 혹시 경보가 울려 대피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몇 년 후, 그곳보다 세대수가 많은 대형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유독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 2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집에서 프리랜서 디자인 일을 하고 있을 때라 일을 하고 있었고, ‘이것만 마무리하고 저녁 먹어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에 갑자기 화재경보가 울렸다. 누가 음식하다가 태웠나보다하고 하던 일을 이어갔다. 항상 경보가 울리면 복도라도 내다보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내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복도에서 어떤 여자분이 소리를 질렀다.

“불났어요!!!!!”


그제야 나는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회색 연기가 오피스텔 복도를 꽉 채우고 있었다. 패딩을 입고, 핸드폰과 지갑만 들고나왔다. (그 와중에도 작업물을 저장하고, 컴퓨터 시스템 종료까지 눌렀다) 다행히 2층에 살고 있었기에 계단으로 후다닥 뛰어나올 수 있었다.


1층 상가 복도에서는 스프링 쿨러가 터져서 물이 뿌려지고 있었고, 밖에서 보니 건물도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덜덜 떨려서 핸드폰의 통화버튼조차 제대로 누를 수가 없었다. 이건 실제 상황이었다. 놀라서 속이 울렁거리고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건물 앞 공터에는 피신한 입주민들로 북적였다. 이윽고 소방차가 왔다. 5대는 되었던 것 같다. 1층 편의점 쪽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금방 진화가 되었고 무사히 집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문으로 연기가 새어 들어왔는지 집안은 뿌옇고 탄내가 났다. 밖은 영하 10도인데 아무리 창문을 열어놔도 탄내는 가실 줄을 몰랐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몇 시간을 주변 카페에 앉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중에 듣기로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가 편의점 옆 실외기로 들어갔고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에 쌓여있던 먼지에 불이 붙으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이때 이후로 집을 구할 땐 1층에 상가가 있는 건물은 피하고, 대피가 용이한 낮은 층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커피 한잔을 옆에 두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시는 악몽 같은 경보가 울리는 일이 부디 일어나지 않길... 이 소중한 일상의 평화가 계속되길 너무도 간절하게 기도한다. 그런데 인생은 두더지 게임이라던가? 문제는 계속 터진다. 토요일인 어제 갑자기 냉장고 전원이 나갔다. A/S는 수요일에나 올 수 있다고 한다. 크게 한번 놀래고 나니 냉장고 고장은 일도 아니다. 졸지에 아이스박스가 되어버린 냉장고에 얼음을 가득 채웠다. 수요일이면 해결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 뭐 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