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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Jun 11. 2023

헤어질 결심

나는 시간만 나면 울었다. 밥을 먹다가도, 업무 메일을 쓰다가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도 울었다. 주말에 혼자인 시간을 견딜 수 없어 금요일엔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집에 가서도 거실에 앉아 계속 울기만 했다. TV를 보면서도, 조카가 놀아달라 보채도... 내 뇌의 반쪽은 24시간 쉴 틈 없이 그에 대해 재생되고 있었다.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화장실에 갔다가 조용히 나와 잠자리에 누웠다. 갑자기 엄마가 안방에서 나와 나를 찾았다.

"니가 화장실 들어갔는데 한참을 안 나온다고 아빠가 빨리 나가보라고 해서..."

잠을 못 이룬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날은 유독 이상한 날이었다. 퇴근길에 그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한참이 지나 읽긴 했지만, 답이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바로 전화를 했겠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다음 날 아침, 그는 평소와 달리 수상하리만치 자세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는 형이 힘든 일이 있다면서 갑자기 동네로 왔기에 같이 술 한잔했다는 내용이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주말에 그의 집에 갔을 때, 탁자 위에 놓여있는 작은 종이를 무심코 보았다. 연락이 되지않았던 그날의 영수증이었다. 장소는 오래전 나와 함께 갔던 강남 맛집이었다. 영수증엔 친절하게 '인원수 2인'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거 뭐야? 이날 아는 형이랑 동네에서 술 마셨다며"

"공연 파트너 했던 애랑 갔어. 고마운 게 있어서 사줬다 왜! 자! 전화해 보던가!!!"


거짓말을 해놓고 사과나 변명도 없이 뻔뻔하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내가 못 할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공연 파트너? 그의 댄스동호회 공연에 갔을 때 본 적이 있다. 공연을 마치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나와 인사를 하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둘이서만 손을 잡고 있었다. 멀리서 그에게 눈빛을 보내자, 그는 그녀와 잡은 손을 놓았지만, 그녀는 놓아진 손으로 그의 팔짱을 꼈다.


"헤어지자"

사과도, 변명도 없이 날아온 말이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협박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지난 1년 동안 이런 문제로 지겹게도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헤어질 용기가 없었다. 8년이다. 내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그를 뺀 일상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싫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제안했다. 아무 연락도 하지 말고 한 달 동안 떨어져 지내보자고. 그러면 우리가 계속 만나야 할지 헤어져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평소엔 잘 데려다주지도 않던 집을 데려다주었다. 되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랐다.



 

한 달은 더디게 흘러갔다. 처음엔 계속 울기만 했다. 나를 속였다는 배신감,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생각할 때면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슬픔과 분노가 번갈아 찾아왔다. 밥도 넘어가지 않아 두유로 겨우 끼니를 때웠다. 1주일 만에 6kg이 빠졌다. 참지 못하고 몇 번이고 카톡을 썼다 지웠다. 그러다 재회에 관한 영상을 찾아봤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한다. 그를 되찾기 위해 나를 찾아야 했다.


하고 싶었던 것을 적어보았다. 그중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밑줄을 쳤다. 하나는 필라테스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일주일 중 월/수는 필라테스, 화/목에는 스페인어학원에 다녔다. 유연성이라고는 없는 내가 생전 처음 해보는 생경한 동작을 따라 하며 강사가 10초만 버티라고 숫자를 셀 때면 '이것도 못 버티면 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다'라고 비장해지곤 했다.


일상을 다른 것으로 채우니 조금은 버틸 만했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선택지에 '이별'은 없었다. 다시 만날 궁리만 했다. 간혹 그의 동호회 카페를 염탐했다. 열심히 이 모임, 저 모임 참석하며 잘 지내 보였다. 유독 친해 보이는 그녀도 함께였다. 그럴 때면 다시 잠잠해졌던 분노가 치솟아 다시 전화기를 들어 따지고 싶으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만날 날이 다가온다는 안도감에 밥도 다시 먹을 수 있었다.




약속한 한 달이 지났다. 어떻게든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조금은 과감한 디자인의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썼다. 한 달 동안 빼놓았던 커플링을 다시 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설렘, 두려움, 걱정으로 뒤엉켜 멀기만 했다. 


멀끔한 모습의 그를 만났다. 한 달 전 그날처럼 비열한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는 지난 8년 동안의 앙금들과 한 달 동안 느낀 점들에 대해 종일 이야기했다. 결론은 다시 만남을 이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그로부터 1년 후 이별했다. 헤어질 결심을 하기까지 1년이 걸린 것이다.


나도 오래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그저 매일 이별을 미루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진작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상처를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더는 화살이 꽂힐 수 없을 만큼 틈도 없는 과녁이 될 때까지. 헤어진다는 것은 절벽에서 발을 내딛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저 삶의 많은 계단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수십번 던지면서도 내가 헤어질 결심을 할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을 그의 배려라고 헤아리게 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또다시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나의 부족함을 상대가 아닌 오롯이 나로 채우고 사랑하겠다. 그리고 이별은 덜 미련스럽고, 간결하게 할 테다.




눈 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었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김승희의 ‘장미와 가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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