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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Mar 24. 2024

드러내놓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흔이 넘어 뒤늦게 교정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갑자기 왜 교정을 하게 됐냐고 묻는다. 발치로 그야말로 '이빨 빠진 갈가지'가 되어 뻥 뚫린 잇몸을 보면서 흠칫 놀라며 안타까워하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교정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깨진 이 하나를 뽑게 되었고, 그 치아가 나기 전에 다른 치아가 성장하면서 그 자리를 채우게 되면서 중심선이 쏠리게 되었고, 그 때문에 턱관절, 안면 비대칭, 부정교합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고… 예전 같았으면 들킬까 꽁꽁 숨겨놓았을 콤플렉스를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팀원들과 점심 회식을 하게 되면서 교정을 시작한 것을 알리게 되었다. 이미 교정기를 부착한 지 3주가 지났는데 말이다. 그간 중간중간 마주 보고 대화할 일도 있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우리 팀은 극한의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우리 팀은 50명이 아니다. ‘5명’이다)


나는 왁자지껄한 삼계탕집에서 다시 한번 왜 교정을 시작하게 됐는지 브리핑해야 했다. 내 치열이 중심이 틀어져 있고, 내 얼굴이 비대칭인지 알아챌까 무표정으로 무장했던 지난날은 이미 과거가 되어있었다. 아마 그것은 내 고민을 생각으로만, 콤플렉스로만 가지고 있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실행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3개의 치아를 발치해서 아직은 쑴벅쑴벅 통증이 있는 잇몸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움직여서 채워진다는 것인지, 이제 생니를 뽑았으니 돌아갈 수도 없겠다는 생각과 과연 잘하는 짓인지 하는 잠깐의 의심이 스친다.


그 좋아하는 면을 앞니로 끊어먹을 수가 없고, 생선 뼈에 붙은 살도 무심결에 앞니로 발라먹을 뻔하다가 입술로 간신히 빨아먹으며 언젠가 시원하게 갈비를 뜯어 먹을 수 있을지 꼽아보면 2년이라는 시간이 구만리처럼 느껴진다. 점심은 주로 국밥을 먹으러 다녔는데 순대국밥, 뼈해장국 같은 것들은 꿈도 못 꾸고 먹기 쉬운 것을 챙겨가서 간단히 먹는다. 그랬더니 3주 만에 체중이 3kg 빠졌다. 회사 서랍에 음식을 잘게 잘라먹으려고 가위도 사놓고, 항상 이에 뭐가 꼈는지 체크할 수 있도록 휴대가 간편한 카드형 거울도 샀다.


나의 사소한 습관도 알게 됐다. 영양제를 먹을 때마다 알약을 오른쪽 송곳니로 물고 있다가 물과 함께 삼켰다는 사실 말이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송곳니로 물었다가 ’악‘소리를 질렀다. 교정기를 부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라서 예민하고 아플 수밖에 없는 순간에 그 딱딱한 알약을 물었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칫솔질하다가도 삐끗해서 이를 치기라도 하면 으악 소리가 났다. 앞니 뒷면을 닦을 때는 그야말로 초집중해서 살살 닦았다. 그래도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니 그런 통증은 사라지고 조금 치아가 버티는 힘도 생긴 것 같다. 아직은 교정기를 붙이지 않은 어금니로 열심히 씹어먹고 있다. 하지만 12년 전 교정을 한 남동생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누나 지금은 시작도 안 한 거야~ 어금니까지 다 붙이고 철사 조이고 나면 당분간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는다~ 큭큭큭”

다음 주 화요일이면 교정기를 어금니까지 다 붙이게 된다. 그 전에 열심히 먹어놔야 한다. 그래서 주말엔 나의 소울 푸드인 떡볶이와 튀김을 시켜 가위로 잘게 잘라서 오물오물 열심히 먹었다.


마흔이 넘으니, 예전에 자주 보던 친구들도 몇 개월에 한 번, 혹은 1년에 한 번도 겨우 보게 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또 내가 어릴 때 이를 뽑게 된 이야기부터 해서 이야기해야겠지? 하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뻥 뚫린 잇몸에 교정기를 붙여 흉한 몰골로도 전보다 훨씬 환하게 웃는다. 아마 그 친구들을 두어 번 만났을 때쯤이면 교정이 끝나 더 환한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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