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멀미

by 나무향기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도산서원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자 전에 없이 버스는 요동을 치고 멀미가 난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울기 시작한다. 난데없이 망고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버스 지붕을 뚫은 망고가 내 입에 와 처박힌다.

입으로 떨어진 망고를 먹으니 멀미가 더 심해지고 있다. 망고를 우걱우걱 씹으며 난 울고 있다.

“엄마!”


꿈이다. 꿈속에서 시작된 멀미는 깨어나서도 그칠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조금의 움직임에도 토가 나올 것만 같다.

하루 종일 집에 누워만 있다. 침대는 어릴 적 탔던 버스 안처럼 출렁인다. 봉지를 들고 버스를 탔던 그때처럼 내 침대 옆엔 언제 솟구칠지 모르는 토를 받아줄 세숫대야가 준비되어 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간신히 시리얼 몇 조각을 입에 넣어본다. 살기 위해 콘프로스트 몇 조각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는다. 엷은 단 맛이 역해 또 구역질이 올라온다. 그래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잘 자랄 수 없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랭울(Reng Ul) 아줌마는 나에게 생강을 가져다주며 입덧이 올라올 때마다 씹어보라고 했다. 생강을 조금 씹어 보았지만 여전히 속이 매스껍고 멀미가 난다. 냉장고 문을 열 수도 없고, 요리를 할 수도 없다. 입덧이란 이런 것이구나.


푸른하늘의 '겨울 바다'를 틀었다. 여름 바다뿐인 이곳에서 겨울 바다를 그리워한다. 유영석의 연약한 미성이 내 입덧을 가라앉혀주는 것 같다.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그래 줄 겨울 바다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내가 아닌 생명체가 유입되자 내 몸은 새로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는 예상될 수 없는 새로운 감각 정보들이 서로 충돌하며, 수용 감각과 외부 자극의 불일치에 의해 멀미가 나는 것처럼, 처음 경험하는 임신이라는 자극에 나의 수용 감각들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내 몸의 에스트로겐이 활발하게 분비될수록 나의 후각은 평소 맡지 못하던 미세한 냄새까지 캐치를 하고 있으니, 과거에는 캐치하지 못했던 새로운 냄새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 나의 신경계들은 출렁이며 입덧의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아침에 심하던 입덧은 저녁이 되면 침대에서 간신히 일어날 만큼은 잦아들었다. 그러면 갑자기 식욕이 솟구쳐 메이떼추의 단팥빵과 에비수야의 계란 샌드위치, 코코너츠의 돈가스와 미야꼬의 캘리포니아롤들이 머릿속을 둥실둥실 떠다닌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스꺼움에 식욕은 다시 거품처럼 사라졌다.


재훈 씨는 내가 사이판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아피기기(Apigigi)를 캐피털 힐(Capital hill)까지 가서 사 가지고 왔다. 바나나 껍질에 싸여 하얀 속살을 드러낸 아피기기를 보니 식욕이 다시 살아난다. 코코넛 향을 품은 찰떡처럼 쫀득한 아피기기 한 입에 행복해진다. 쫀득한 타피오카 사이로 코코넛 과육이 씹히는 고소한 맛이 어릴 때 먹던 '버버리 찰떡'을 생각나게 한다. 외할머니가 절구에 쳐서 만들어주시던 그 찰떡을 먹는 것 같다. 배고픈 시절 내 허기를 채워주던 고마운 버버리 찰떡.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 아피기기.


아피기기. GIGI. 기기. 起起.


아피기기가 날 일으키는 이유를 알겠다. 내 안의 아기는 자기를 살리고 엄마를 일으킬 음식을 내게 찾아주었다.


아기말을 엄마에게 속삭이고 있다.

GIGI. 기기. 起起.





그렇게나 심했던 입덧은 임신 7개월이 되어서야 사그라들고 있다. 다행히 입덧도 가라앉고 진정이 되었을 때 아버님의 누님과 사촌, 조카 가족들이 사이판으로 여행을 오셨다. 모두 8명이나 되는 큰 식구들인데, 아버님의 가족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수한 아버님 고향 사투리가 젓갈 냄새에 흠뻑 젖어 갖가지 김치들로 어우러진 밥상은 내가 그리워한 한국의 향을 가득 싣고 있었다. 시고모님이 이 봉지, 저 봉지에서 마른 생선과 마른 나물들, 갖가지 반찬들을 꺼내 보이시며 내게 말을 거신다.


"맛있것지잉? 이것들이 내가 다 말리고, 만들어 온 것들이라고잉."

주름 끝에 맺힌 선한 웃음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외로이 일만 벗 삼으시던 아버님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많은 가족들과 함께 하게 되자 평소와 달리 활기에 넘치신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지난 아버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시자 아버님은 시원한 너털웃음을 웃으신다.


"어찌다 여기까지 왔는고잉? 참말로 대단하구마잉. 외롭지는 않는가잉? 친정식구 보고자플 것이디잉. 남편이 그리 좋던가잉?"


아버님의 사촌 형님 내외와 조카 내외 분들은 혼자서 이렇게 멀리까지 시집온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셨는데, 그들의 구수한 사투리 속에 따뜻한 마음이 흠뻑 녹아 있었다.


원래 여자는 임신 기간 겪은 모든 경험을 평생 지고 가는 습성이 있다. 임신 기간 때 잘해 준 사람은 평생 좋은 사람으로 남고, 그 기간에 상처를 준 사람 역시 평생 좋지 않은 기억의 사람으로 남는다. 그들의 웃음이, 눈빛이, 사소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평생 담아둘 따뜻함이 되었다.


재훈 씨와 나는 가족들을 모시고 사이판 이곳저곳을 관광시켜드렸고, 모두들 아름다운 섬의 바닷속 풍경에 매료되었다. 바다 위에서 밥알처럼 둥둥 떠다니며 스노클링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래사장으로 나올 때 아버님의 질부가 내게 오셔 말을 거신다.


"임신 중인데 우리 데리고 이렇게 섬 구경도 시켜주고 고마워. 섬이 예쁘긴 한데, 참 작다. 여기 사는 거 힘들지 않아?"


"괜찮아요. 재훈 씨가 잘해 주기도 하고, 고모가 여기 살거든요."


"그래? 다행이네. 친정 식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훨씬 좋지. 그래도 혼자 이렇게나 멀리 와서 사는 게 대단하네. 임신 중에는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것만 먹어야 예쁜 아기 낳으니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힘들어도 좋은 생각 많이 해야 해."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며 말을 건네는 그녀가 고마웠다.


시끌벅적하게 보낸 열흘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던 날 아버님의 조카분이 시부모님 앞에서 내게 하얀 봉투를 건네신다.


"임신도 했는디, 매일거치 우리 챙겨주느라 고생이 많았소잉. 식구가 많아서 밥 허는 것이 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틴디, 고맙소잉. 얼마 안 되어요. 맛있는 거 사먹으쇼잉."


맛있는 젓갈이 범벅이 된 김치와 갖가지 전라도 음식을 맛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가시며 챙겨주시는 용돈에 맘이 울컥했다. 사실 난 뭐, 한 것도 없고, 애는 어머님이 다 쓰시고, 옆에서 거들기만 했을 뿐인데, 이런 큰 용돈을 받아도 되는가 싶었다.


모두들 돌아가시고 뒷정리를 하는데, 어머님이 부르신다.


"니가 받은 그 용돈, 그거 반만 니가 가져라. 사실 니가 한 게 뭐가 있냐? 그거 너보고 준 돈이 아니다. 우리 보고 준 거지. 그 돈은 사실 우리한테 고마워서 인사한 건데, 그냥 명목상으로 너한테 용돈 준다고 한 거야. 그러니까 그 돈은 반만 가져라."


"네..."


어머님은 돈이 궁하신 분이 아니다. 내가 받은 용돈이 탐나셨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반을 떼어 주라고 하시는 이유는 뭘까? 고생은 당신이 하셨는데 수고에 대한 감사는 내가 받는 것이 마땅치 않으셨던 걸까? 아니면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을 못 박으시기 위해서였을까?


하얀 봉투를 통째로 건네 드렸더니 정확히 세어 반은 꺼내시고 반을 돌려주신다.


마음이 서늘했다. 입덧이 가시긴 했지만, 몸은 여전히 힘들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고, 낮이고 밤이고 잠은 쏟아졌다. 힘겹게 아침에 일어나 수수페 집으로 가서 어머님을 도와드렸는데, 어머님에게 그런 일은 당연한 일로 생각되셨던 걸까. 역시 난 이 집에서 밥을 같이 먹는 식구(食口)는 될 수 있어도 가족(家族)은 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한 노동의 가치는 쉽게도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었고, 나의 노동은 넘치는 대가를 받게 되면 가차 없이 차감되어 전달되는 그런 것이었다. 며느리가 아니라, 노동자 취급을 받은 듯한 느낌에 나는 멀미가 났다. 입덧은 멎었지만, 멀미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어머님에게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도 입덧 같은 멀미의 일종일까?

멀미가 나는 것처럼 새로운 자극과 그 자극을 수용하는 감각의 부조화로 이런 감정적 혼란을 겪는 것일까?

25년의 세월 동안 나의 감정적, 정신적 균형감각을 담당해 오던 뇌의 부분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과 자극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며 나는 지금 감정적 멀미를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타는 버스의 덜컹거림을 따라잡지 못한 나의 전정계가 멀미를 일으킨 것처럼, 새로운 생명체의 유입으로 입덧을 겪었던 것처럼, 지금 어머님과 나 사이에 느끼는 감정적 혼란은 내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감정의 자극들과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 나의 정신계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가족이 아닌, 그저 식구에 불과한 사람임을 받아들여야 했고, 멈추지 않는 멀미 속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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