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큰 쓸모

by 나무향기



내가 좋아하는 장자에 보면 ‘장석과 사당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장석이 사당 나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장석은 그 나무를 오로지 목수의 판단 기준인 재목의 가치로만 따졌는데 사당 나무는 장석에게 이런 말을 한다. 첫째, 자기는 지금껏 쓸모없기를 바라다가 이제야 장석 같은 목수가 쓸모없다고 판정했으므로 마음 푹 놓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런 쓸모없음이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둘째는 장석이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만 보고 함부로 자신을 쓸모없다고 속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 장자 <현암사>

성경에서도 사도 바울이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고린도 전서 7:31)라는 말을 하고 있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자신의 쓸모를 최대한으로 발휘해 사는 것은 결국 쓸모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아이큐 210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김웅용 씨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8세 때 물리학 대학과정을 수료하고, 11세 때는 나사(NASA)의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할 정도로 아이큐가 뛰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15세에 나사를 뿌리치고 돌연 귀국하여 지방 대학의 토목공학과에 입학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왜 쓸모를 다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택했을까? 그 정도 실력이면 서울대도 거뜬히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택했다. 장자가 말한 ’ 쓸모없이’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자기 계발서를 읽고,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따려고 하고, 좀 더 스펙을 쌓으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쓸모를 쓸모없이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호주는 훨씬 자유로운 나라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가 한국보다는 느슨한 편이다. 호주에서는 공부를 잘한다 해도 한국에서 처럼 의대나 법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래서 상당히 똑똑한(?) 학생이 한국사람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는 것도 보게 된다. 아들 친구는 고등학교를 전교 3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고 자기 관리도 뛰어나 매일 3시간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성실한 아이다. 그런데 그는 시에서 관리하는 환경미화원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간 것이 아니라 잔디 깎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쓸모를 다하지 못한 쓸모없는 사람인가? 쓸모없이 사는 쓸모 있는 사람인 건 아닐까?


한국에서 국어교사로 일했던 나는 여기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시작도 내가 했다기보다는 아들 친구 엄마가 내가 국어교사였다는 걸 알고 애들을 모아서 부탁해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생전 가르쳐 보지도 않은 한글을 꼬맹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퍽이나 신선하고 재밌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맑은 마음이 날 정화시켜 줄 때도 있었고 영어를 쓰는 이 나라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아이들이 한국 책을 읽고 쓰는 걸 보는 과정은 그야말로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소박한 이 일을 좋아하고 아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내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 어쩌면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일처럼 보였을까? 9학년(한국의 중3) 남자아이가 선생님은 대학교 나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무슨 대학교 나왔느냔다. xx대를 나왔다고 했다. 그러니 그 녀석이 왜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느냔다. 왜 재능을 낭비하며 여기 있느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난 지금이 너무 좋은데,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나한테는 소중하고 즐거운 일이야. 그것보다 더 나은 일이 있을까? 시간 낭비, 재능 낭비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즐기고 있어.”


내가 가진 재능을 세상에서 온전히 사용하는 삶보다는 내가 가진 재능이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이지 않을까?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보다 재능을 소박하게라도 가치 있게 쓰는 것이 내 삶을 더 빛나게 하지 않을까?


쓸모없이 사는 듯 보이는 그들은 자신의 쓸모를 아끼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쓸모를 위해.


<사진: 이정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