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먹는 데 무슨 용기까지 필요하겠냐고 묻겠지만, 내가 사는 호주에선 도시락을 먹을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굳이 한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가지 않는다면 그런 용기 따윈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한국 음식을 주로 해 먹고 도시락도 한국 음식을 싸간다. 호주 사람들 속에서 한국 음식이 담긴 도시락 뚜껑을 여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낯선 음식의 냄새와 음식의 형체를 호주 사람들은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 때문에 나의 입맛까지 바꾸고 싶진 않았다.
"이게 내가 소리 내는 '도'야."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비웃거나 조롱을 하거나 이상한 '도'라고 했다. 굳이 그런 '도'를 꼭 소리 내야겠냐며, 호주에서 어울릴 법한 '도'를 소리를 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도'는 틀린 음이 아니었다. 단지 한 옥타브 높은 '도'일뿐이었는데, 그들은 나의 '도'가 자기들과 다르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난 나의 '도'를 지키고 싶었다. 이미 올바른 음인데, 높이가 다르다는 이유로 내 '도'를 바꿔가며 '도' 소리를 그들에게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게 나의 '도'라며 소리 높여 높은 '도'를 외쳐보았다.
'도~~~'
국민학교 시절, 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늘 고마웠지만, 늘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이 알록달록 소시지 반찬과 고기반찬을 싸 온 날, 내 도시락에 멸치 볶음만 가득했을 때, 난 도시락 뚜껑을 열기가 부끄러웠다.
3학년이었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 임원 아이들과 교실 정리를 하며 같이 도시락을 먹자고 하셨는데, 하필 그날 내 도시락은 김치와 멸치가 다였다. 선생님이 열어 놓은 도시락엔 사모님이 정성스레 싸주신 돼지고기 볶음과 갖가지 나물들과, 콩조림, 감자채 볶음이 아름답게 놓여 있었다.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아이들도 하나씩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선생님 것만은 못해도 내 도시락보단 다 나아 보였다. 선생님이 내 도시락 뚜껑을 열려고 했을 때 난 못 열게 막았다. 도시락 뚜껑 열기 싫다고 떼를 썼다. 김치와 멸치만 가득한 도시락을 열어 보이기 싫었다. 하지만 힘센 선생님은 내 손에서 도시락을 빼앗아 뚜껑을 열었다.
"우와, 멸치 볶음이네. 내가 이거 많이 뺏어 먹어야겠다. 선생님 멸치 볶음 엄청 좋아하거든."
선생님은 그렇게 너털웃음을 웃으셨지만, 난 여전히 부끄러웠다.
그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자신 있게 도시락 뚜껑을 열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부끄럽다. 그래서 호주에서 만큼은 도시락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도시락을 쌀 때면 호주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든 말든 오기가 나서라도 열심히 한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쌌다. 그렇다고 내가 김치나 된장 같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음식을 싸진 않았다. 웬만하면 김밥이나 삼각 김밥을 쌌고, 가끔 덮밥류를 쌌다.
날 닮은 첫째가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아이는 자신의 도시락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 자체를 두려워 했다. 다른 호주 아이들처럼 제발 샌드위치랑 과자를 도시락으로 싸 달라고 했지만, 평소 먹지도 않는 빵과 과자를 싸가겠다고 하는 녀석이, 마치 엄마의 도시락을 부끄러워했던 어린 나를 보는 것 같아 그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니가 샌드위치를 정말 좋아하면 엄마가 싸줄 텐데, 넌 단지 한국 음식을 싸 가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잖아. 한국 음식을 좋아하면서, 왜 학교에는 한국 음식을 안 싸가겠다는 거야. 한국 음식은 부끄러운 음식이 아니야."
하고 말하면 아들은 마지못해,
"알았어요. 싸주시는 대로 싸 갈게요."라고 대답했다.
녀석은 도시락을 부끄러워했던 어린 나처럼 도시락 뚜껑을 아예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와 집에서 먹지 못한 도시락을 먹어치웠다. 왜 안 먹었냐고 물어보면 배가 안고파서 안 먹었다고만 했다. 물론 그 말을 믿진 않았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른 척하고 두고 보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짓궂은 아이들은 카레 밥이나 짜장 밥을 싸가면 누구 똥을 싸가지고 왔다고 놀렸고, 멸치 볶음을 보고선 눈알이 달린 생선을 어떻게 먹냐며 야만인 취급을 하고 놀렸다고 한다. 니 도시락에선 쓰레기통 냄새가 난다고 놀렸으니 첫째는 아이들 앞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커 갈수록 식욕이 왕성해지고, 점심시간이면 배가 고파지자, 녀석은 도시락을 몰래 운동장으로 들고나가 나무 그늘 아래 혼자 숨어서 먹었다고 한다. 매번 그렇게 반 아이들을 피해 숨어서 도시락을 까먹었는데, 어느 날 운동장 저편 구석에서 자기처럼 몰래 숨어 도시락을 까먹는 인도 아이를 보았다고 한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 '너도 나랑 같은 신세구나.' 하며 그 인도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면, 그 아이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고 한다.
난 학교에서 첫째가 도시락 때문에 당하는 놀림과 설움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둘째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똑같이 한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주었다. 둘째 역시 자기도 다른 아이들처럼 샌드위치를 도시락으로 싸 달라고 부탁했지만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난 평소 먹지도 않는 샌드위치를 남의 이목 때문에 싸주긴 싫었다.
"니 친구들한테 '우린 이런 거 먹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순 없을까? 엄만 니가 다른 사람 때문에 너의 입맛을 바꾸길 바라지 않아."라고 똑같이 말했다.
둘째도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지만, 둘째는 첫째와는 달랐다. 둘째는 식성도 좋고, 절대 도시락을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배를 가지고 태어났다. 워낙 붙임성이 좋고 임기응변에 능통한 둘째는 아이들이 놀리는 상황에도 잘 처신했다.
짜장밥을 싸간 날 아이들이 '이 똥 같은 음식은 도대체 뭐냐?"라고 놀렸을 때 당당하게
'이거 초콜릿으로 만든 고기 야채 밥이야. 이런 거 안 먹어봤지? 엄청 맛있다.'며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것이 초콜릿이란 말에 무척 부러워하기까지 했단다. 도시락을 열 때 나는 이 이상한 냄새는 뭐냐고 아이들이 놀리면
'내가 방귀 뀌었어.'라며 둘러대곤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한참이 지나,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이스쿨에선 더 이상 반 아이들이 도시락 때문에 놀리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한국 음식을 한 번만 먹어보자며 졸라댔으니, 그제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식으로 내게 초등학교 때 받은 도시락 설움을 털어놓았다.
아들들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자신의 '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나 역시 도시락을 쌀 때 그런 용기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의 이목에 휘둘려 내 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선, 내가 가진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다.
융통성을 발휘해 사람들과 섞이는 것도 무척 중요한 것이지만, 내가 이미 '도'를 정확하게 소리 내고 있는데, 나의 '도'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남들의 말에 휘둘려 그들의 '도'를 따라 부르고 있다면, 그 '도'는 부끄러운 '도'인 것이었다.
세상엔 낮은 '도'도 있고, 한 옥타브 올라간 높은 '도'도 있다. 같은 '도'음 일지라도 높이가 다른 '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도'를 당당하게 소리 낼 용기가 필요했다.
'도~~~'
나의 도는 높은 '도'다.
음치 튜닝 '도' 카드--용감하게 나를 지킬 '도'시락 카드
<그림: 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