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모래 '시'계를 처음 보았을 때 좁디좁은 잘록한 허리춤 관을 통과하는 모래를 보며 목구멍이 차오르는 갑갑함을 느꼈다. 좁은 관을 지나 모래가 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다. 하지만 그 갑갑함과 답답함에도 난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떨어지는 모래알들을 지켜보곤 했다.
난 조급증 환자다. 조급증이 거의 환자 수준이다. 냄비 물이 올려놓고, 끓을 때까지 지켜보는 중증 조급증 환자다. '시'간은 내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난 그 '시'간을 절대 기다리지 못했다. 늘 모래 시계의 모래가 한 알씩 떨어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며 언제 다 바닥으로 떨어지는지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며 조급해하듯, 해내야 할 일들에 늘 조급해 했다.
내가 '시~~~'라고 노래하면 사람들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시'음을 내라고 했다. 그렇게 '시'음을 내 버리면 음을 그르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난 '시'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조급해하고, 나의 '시'를 닦달했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그 조급증 때문이었다. 상대는 자신이 무언가가 준비될 때까지 내가 기다려 주길 바랬지만, 난 늘 그 준비를 당장에 강요하곤 했다. 상대는 템포를 천천히 해서 왈츠를 추고 싶어 했다면, 나는 박자를 쪼개고 쪼갠 64분 음표가 백 개쯤 붙은 탭댄스를 추고 싶어 했다. 그러면 늘 상대는 스텝이 꼬여 넘어졌고, 결국 나와는 다시는 춤을 추지 않겠다고 선언해 왔다. 그럼에도 난 깨닫지 못하고 '너처럼 스텝이 꼬이는 애랑은 나도 안 사귄다!'라고 하며 나의 바쁜 스텝을 맞춰줄 사람을 찾았다.
지금의 남편은 전형적인 ISTP 유형이다. 느긋하고, 연락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좀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이런 남자와 내가 1년이란 긴 기간 동안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장거리 연애를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때 외국에 살았기 때문에 우린 편지와 전화로 연애를 했다.
한국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끌린 건 사실이지만,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그에게 많이 실망했다. 메일을 쓰면 3-4일이 지나서야 답장을 했고, 어떨 땐 일주일이 지나서야 답장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노시느라' 바쁘셨다는 핑계를 댔지만, 메일이 오면 제까닥 답장하는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았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감정의 벽은 높아져, 난 이별을 통보했다.
우린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성급하게 단정 지어 말했지만 그는 나를 잡았다. 아직 서로를 잘 몰라서 오해가 생긴 걸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 봐달라고 했다. 난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고, 두 번이나 그를 내쳤지만 그때마다 그가 날 잡았다. 만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메일로 또다시 거절하기도 미안했고, 만나면 정식으로 이별통보를 하리라 생각하면서, 일단은 연의 끈을 남겨두기로 했다. 그냥 멀리 외국 사는 친구가 있는 셈 치기로 했다.
사실 그때 난 마음에서 그를 버렸다. 연의 끈은 쥐고 있었지만, 친구 정도로만 생각했기에 더 이상 남자 친구에게서 기대해야 하는 것들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조급증을 부릴 이유도 없었다. 연락이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멀리 외국 사는 친구를 대하듯 그를 대했다.
그렇게 일 년의 연애 기간이 지났고, 쌓인 정에 어쩌다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그는 나의 본연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결혼을 했다.
문제는 결혼 이후였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해야 하는 스타일이었고, 남편은 한참을 버티다가 낭떠러지 끝에서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집이 난장판이 되었어도 남편은 밤이 되면 잠부터 자야 하는 사람이었고, 난 다 치우기 전에는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된장찌개를 끓이려다 두부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난 당장에 고속도로를 타고 한인 슈퍼를 가서라도 두부를 사 오는 사람이었지만, 남편은 두부 없이 된장찌개를 먹자고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우린 자주 부딪혔지만, 남편은 그럴 때마다 늘 그렇듯, 나에게도 '시'간을 주었다. 나의 조급증이 나도 들들 볶고 있고, 상대방도 들들 볶아대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게 '시'간을 주었다.
훈계조로 날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힌트만 주면서 내게 잠'시' 기다려 보는 게 어떻겠냐며 잘 타일러 주었다. 그렇게 나는 '시'음을 배워갔다.
내가 조급하게 '시'음을 잡으려고 안달복달하면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버린 카드라고 생각했던 그는, 실은 조커였다.
아직도 '시'음을 잡지 못하고 서둘러 '시'를 내려다 노래를 망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손을 잡아주며 다시 음을 잡아준다.
'시~~~'
여전히 조급증이 치고 올라올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의 손과, 어느새 다 내려온 모래시계를 떠올린다. 모래시계에서 모래알이 떨어지는 것만 바라보며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을 들볶던 나는 이제, 어느새 아래로 다 내려온 모래시계를 엎어두고 또다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시'음은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기다릴 시간. 천천히 '시'간을 두고 연습하다 보니, 결국 '시'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
차분하고 고요한 맑은 소리가 난다.
음치 튜닝 '시' 카드 -- 잠'시' 기다리는 모래 '시'계 카드
<아들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