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좀 크게 켜'라'고?

by 나무향기

사람들은 저마다의 '라'디오를 켜고 다니며 자신의 소리를 낸다. 그들의 라디오는 재밌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오만하게도 난 내 라디오 소리만 크게 켜놓고 다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라디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라디오 켤 때, 난 그들의 볼륨을 의도적으로 줄인 적도 많았다. 그게 문제였다. 귀에 기능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매번 남의 라디오 볼륨을 내 맘대로 줄여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난 누군가의 말을 듣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라'음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라'를 잘 듣고 따라 해야 했는데, 그들이 아무리 알려주려고 해도 내가 줄여 놓은 볼륨 때문에 그들의 '라'음은 잘 들리지 않았다. 내 라디오 볼륨만 한껏 키워 놓고 있었기에 나의 '라'는 고집 세고, 시끄러운 '라'음이 되어버렸다.


나의 '라'에는 오만방자와 교만이 서려 있었다. '들어봐야 다 그 '라'가 그 '라'야'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라'를 폄하했다.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나의 소리에만 심취해 '라'를 질러댔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에게 제발 좀 잘 들어보라고 답답해하기도 하고, 그렇게 니 맘대로 할 거면 이만 '바이, 바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옆에서 내가 그들의 '라'를 잘 들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건 교만과 함께 주의집중력 장애도 한몫을 했다. 성인 ADHD 끼가 있는 것인지, 난 도무지 내가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아줄 인내심이 부족했다. 듣고 있다가도 자동반사적으로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지곤 했다. 친구나 가족들은 다들 나에게 왜 늘 맥락 없이 다른 이야기를 하냐고 했고, 열심히 말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다고 속상해했다.


재미난 영화 이야기를 침 튀기며 하는 친구에게 난 갑자기

"너, 그 머리 어디서 했니?"라고 물어 분위기를 깨어버렸고, 아들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있었던 어처구니없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데, 난 갑자기,

"도시락은 맛있었어?"라고 물어 아들의 기분을 망치기도 했다.

친정엄마가 한참을 자기 친구 흉을 보고 있는데, 난 갑자기,

"참, 깻잎 김치는 어떻게 담아야 맛있어요?"라고 해서 엄마가 황당해하시기도 했다.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것보다 듣지 않으려는 귀를 가진 것은 더 비극이었다. 도무지 소통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자 날 염려하던 사람들은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 라디오 볼륨을 좀 높여서 들어보면 안 될까? '라'라고 아무리 알려줘도 니가 볼륨을 낮춰 놔서 잘 안 들리잖아."


그들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내 볼륨은 좀 줄이고 다른 이들의 볼륨을 높이는 일은 나에게 도전이 되는 일이었다. 애당초 내 볼륨만 크게 켜 놓고, 다른 볼륨은 거의 음소거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 반대로 하기란 쉽지 않았다. 때론 나를 음소거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있었는데, 난 날 음소거시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나에게 결핍된 겸손을 끌어내 나의 소리를 줄이려니 힘이 들었다.


고백하는데, 가끔 난 다른 사람들의 볼륨을 음소거 해두고 듣는 척만 하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정말 볼륨을 키워 놓고 듣는지, 음소거를 해두고 듣는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거짓으로 듣는 척만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거짓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그들에게 결국 상처를 줬다. 그래서 차라리 못 듣겠으면 자리를 뜨는 한이 있더라도, 듣는 척만 하진 않기로 했다.


난 듣는 이들에 대한 내 마음의 태도를 바꾸었다. 들어야 되니까 듣는 게 아니라, 말하는 이들에게 애정이 있으니까,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들이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나에게까지 나눠주려는지 애정을 가지고 살폈다. 그렇게 하자 그들의 말에 공감하게 되었고, 그들의 감정을 조금씩 따라갈 수 있었다.


볼륨은 손으로 높이는 게 아니었다. 마음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내 마음에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자, 그들의 볼륨은 저절로 올라갔다. 그들의 말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라'를 배워갔다. 내가 소리 내고 있었던 '라'는 너무나 독단적이고 오만했지만, 다른 사람의 '라'를 듣기 시작하자 드디어 맑고 청량한 '라'음을 낼 수 있었다.

'라~~~'


랄랄라~~~

'라'는 즐겁게 듣고, 즐겁게 부르는 음이었다.


음치 튜닝 ‘라’ 카드— 볼륨을 키워 잘 듣는 '라'디오 카드


<아들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