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을 줍는 계절이 난 좋다. 이곳 호주 솔방울은 한국 솔방울과는 달리 자이언트 하다. 아주 작아도 길이가 10센티는 훌쩍 넘고 통통하니 땔감으로 쓰기 딱 좋다. 솔방울로 불을 피우면 솔방울이 타면서 기분 좋은 솔향이 난다. 다 탄 솔방울이 숯이 되어 붉은빛이 일렁이면, 불 속에서 보석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난 자신을 솔방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솔방울에게서 나는 이런 기분 좋은 향도, 신비스러움도 갖지 못했다.
솔방울과 난 무척 닮았다. 건조한 날씨엔 솔방울이 비늘을 한껏 벌려 씨앗을 훨훨 날려 보내는 것처럼, 날 눅눅하게 할 사람들이 없이 편안한 환경에선 나 자신의 솔직한 모습이 가감 없이 발휘된다. 주책없이 너무 있는 대로 없는 대로 드러내다가, 남겨두어야 할 씨앗마저 훨훨 날려 보내버리고 만다.
게다가 벌어진 솔방울이 줍는 사람의 손을 따갑게 하는 것처럼, 주책스럽게 벌어진 나의 모습은 주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난 역시 INTJ라서, 사람이 많고 낯선 환경이 되면 오므라든 솔방울처럼,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만 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오므라든 솔방울의 모습일 땐, 누구에게도 손에도 잡히기 쉬운 솔방울처럼, 따갑지 않은, 쉬운 사람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날 잘 모르는 사람은 조용하고 말없는 차분한 사람으로 날 평가했고, 날 잘 아는 사람은 주책 지분을 상당 보유한 사람으로 날 알고 있다.
문제는 벌어진 솔방울이 될 때였다. 그 주책기를 잘 조절해야 하는데, 한번 벌어져 신이 난 나의 솔비늘들은 다시 오므라들 줄 모르고 벌어만 지다 지켜야 할 씨앗까지 모조리 날려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기분이 좋아지면 해서는 안될, 숨겨두어야 할 말들도 케이티엑스를 타고 어디선가 줄줄 흘러나왔다. 술을 마시는 일은 없으니 술 취해서 그렇다 변명도 못했다. 난 진솔을 넘어선 주책스런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내 옆에 있던 내 친구나, 남편이나, 아들은 날 쿡쿡 찔러대며 나의 '솔'을 막았다.
내가 '솔~~~'하고 소리를 내면 서둘러 주위의 사람들은 내 입을 막아섰다. 제발 그 '솔' 좀 멈추면 안 되겠냐고 했다. 솔솔 흘러나오는 나의 '솔'은 듣기에 거북하다고 했다. 내가 솔방울 같은 사람이라 그런 걸 어떡하냐고 했지만 그건 변명이었다. 솔방울은 씨를 날려 보내 땅에 심길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난 아무 명분도 없이 속을 훤히 내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난 입단속을 받아야 했다. 남편과 아들은 내가 기분이 좋아졌다 싶으면 꼭 옆으로 살곰살곰 와서는 입단속을 시켰다.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쿡쿡 찔러주었다.
'솔'음을 배워야 하는데, '솔'음을 자꾸만 내지 말고 참고 있으라고 하니 노래를 부르고 싶은 나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입 다물고 답답한 채로 가만히만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답답할 때 혹여나 어디선가 '솔솔'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어김없이 난 사고를 치고 만다. 입도 가벼운데 난 귀까지 팔랑귀이고, 그 팔랑귀는 저며 놓은 광어회처럼 얇디얇다. 그래서 바람이 솔솔 불면 난 여지없이 그 바람에 휘말려 버린다. 그때 일은 터지고 만다. 그렇게 해서 당한 사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피싱이란 피싱에는 죄다 한 번씩 낚여 버려 나의 '솔'은 비늘이 너덜너덜 해졌다.
나의 '솔'은 여러 모로 너무 가벼워 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솔'을 제대로 내기 위해선 지금 내가 솔방울을 벌릴 상황인지, 오므릴 상황인지 잘 판단해야 했다. 바람이 솔솔 불어와도 휘둘리지 말고, 거짓 '솔'소리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었다.
음치 교정 선생님은 때가 되었을 때, 무게감 있게 '솔' 소리를 내라고 일러 주셨다. 이게 진짜 '솔'인지, 가짜 '솔'인지 잘 듣고 음을 내라고 일러 주셨다.
'솔~~~'
아무리 기분 좋아 '솔'이 잘 나올 것만 같아도 무게를 유지하며, 적당한 음량으로만, 목이 쉬도록 내지르진 말라고 일러 주셨다.
알맞은 습도에서 알맞게 벌어진 나의 솔방울은 그제야 제대로 된 '솔'소리가 난다.
'솔~~~'
솔솔바람이 불어도 거짓 '솔'에 말리지 말고 진실된 '솔'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솔~~~'
솔방울처럼 신비스럽진 못해도, 알고 보면 '솔'은 참 '솔'직한데...
음치 튜닝 '솔' 카드--알맞게 비늘을 열 줄 아는 '솔'방울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