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번,

by 나무향기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 분노하는 것, 증오하는 것, 슬퍼하는 것, 괴로워하는 것, 힘들어야 하는 것. 그 복잡한 감정을 '미워하다'로만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감정이 복잡한 만큼 내가 그 '미'를 소리 내면 고통이 따라왔다. 누군가를 미워한 감정은 결국 나에게도 상처가 되었다.


내가 '미'를 소리 내면 '미'는 어김없이 다시 나에게로 꽂혔다. 분명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미'를 소리 내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따갑게 나에게 꽂히곤 했다. '미'는 미운 감정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소리가 제대로 나질 못했다. 아름다운 '미' 소리를 내려면 내 마음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떨쳐내야 했다.




난 사람을 쉽게 사귀질 못한다. 한참을 우려내야 하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서로 발효가 될 만큼의 긴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처음부터 바짝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한국 사람이 드문 타지에서 맘 붙일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였고, 자신을 귀히 여기는 남편이 있었다. 그러던 그녀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을 잃었다. 희귀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결국 딸은 세상을 떠났다. 오래도록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가 남편과 아들들의 지극정성으로 겨우 기운을 차리게 되었을 때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그녀는 유럽 여행을 준비하느라 여러 가지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고도 친근하게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여행'이란 관심사 때문에 우린 쉽게 친해졌고, 그녀는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나와 우리 가족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나를 만나면 좋은 말만 했고, 나를 극진히 아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렇듯,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는 속도만큼 나도 그녀에게 같은 속도로 다가가기는 힘들었다. 난 시간과 발효과정이 필요한 사람이라, 급속도로 나에게 향하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친해도 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가족끼리만 논의할 문제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고,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원래 내 모습으로 그대로 있었을 뿐인데,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내가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답을 하지 않았다. 친자매처럼 날 대하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난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말실수라도 한 것일까?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말았을까?


수많은 문자는 답변이 되지 않는 그대로였고, 카톡도 1만 사라진 채 답이 없었다. 전화 역시 받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에게도 전화를 해 보았지만 같은 반응이었다. 그렇게, 알 수도 없이 친구를 잃었다 생각되었는데, 거의 반년이 지나서 그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병원으로 찾아갔지만, 그녀는 면회를 거절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상의도 없이 같이 다니던 모임을 그만둔 것에 화가 났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난 그 모임에 더 이상 참석할 수 없었던 우리 가족만의 이유가 있었고,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모임을 더 이상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화가 난 포인트는 '자신과 상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모든 일을 나누고 싶어 했지만, 난 내가 나눌 수 없는 부분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감성이 고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가 가진 '간격'에 차이가 있었다. 나의 좀 더 넓은 간격을 필요로 했고, 그녀는 좀 더 좁은 간격을 원했다. 그래서 우린 교집합을 이룰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간격의 차이에 상처를 받았는지 그녀는 소위 요즘 유행하는 '손절'을 나에게 행한 셈이었다. 난 손절당한 것이었다.


그녀가 선물로 준 꽃화분이 쓰러졌다. 세찬 바람에 쓰러져 화분에는 금이 가고, 가지는 부러지고, 잎은 떨어지고, 피었던 꽃마저 떨어져 버렸다. 다시 일으켜 세운 꽃나무는 상처가 가득하고, 얼마 남지 않은 잎도 짓이겨져 있었다.


나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해 주던 사람이 어느 순간 돌변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쓰러진 화분을 보는 심정이었다. 미움이나 분노보단 공포에 가까웠다. 난 그동안 우리가 쌓아 왔던 시간과 추억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너져 버리고 훼손되는 공포심을 느꼈다.


처음엔 공포로, 다음엔 분노로, 그다음엔 미움으로...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자 모든 감정은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나에게 상처를 받은 것이구나. 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픈 사람이구나. 그녀는 외로운 사람이구나. 이해할 수 없던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미움'과 '애정'은 종이의 앞면과 뒷면이었다.


진심을 담아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호소의 긴 문자를 보냈지만, 아직 그녀의 마음은 닫혀 있다.


이젠 그런 그녀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녀는 그녀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내게 달려오는 그녀의 애정의 속도를 내가 따라가 주지 못해 그녀가 기다려야 했던 만큼, 나는 그녀가 상처를 다독이기 위해 가져야 할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의 높은 '미'는 아직 미완성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 날 용서해 줄 그녀의 '미'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나의 '미'를 받아주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설령 그날이 오지 못한다 해도 그녀의 '미'를 기다리겠다.


그래도 미완성인 나의 '미'를 소리 내 보려 한다. 내가 미워했던 모든 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미'를 소리 내 보려 한다.

'미~~~'

소리가 차갑다.

차갑고 슬프다.


음치 튜닝 '미' 카드--'미'워도 다신 한번 카드

<그림: 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