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목소리로 무대를 채우는 '솔'로 가수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운 나에겐, 혼자서, 그것도 많은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높이고 있는 그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었다.
내 인생의 노래엔 누군가가 늘 옆에 있었다. 어릴 땐 엄마와 아빠가 옆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고, 좀 더 커서는 동생들과 친구들이 같이 불러 주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함께 해 주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노래를 할 때 언제나 합창만 있을 순 없다. 언제고 반드시 혼자서 노래를 해야 하는 '솔'로 파트가 오고야 만다.
'솔'이 바로 솔로로 불러야 하는 음이었다. 이 '솔'은 나에게 두렵고, 벅찬 음이었다. '솔'을 '솔'로로 부를 때마다 내 모든 근육은 굳어져 버렸고, 입술엔 경련이 일고,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기어들어갔다. 안간힘을 다해 큰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다른 사람들 귀에 내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자신이 없었다.
학창 시절 난 성적이 좋았다. 그 '성적이 좋다'는 것은 내가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기보다, '시험'이라는 제도에 최적화된 기질을 좀 타고났고, 그에 더해 성실함을 갖추었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몸치고 운동치였지만, 난 될 때까지 연습해서 체육 과목에서도 '수'를 사수하고야 말았다.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것이 그때의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었다. 이론 시험을 아무리 만점을 맞았어도 실기가 중요한 음악에서 '독창'시험이 주어졌을 땐, 그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질 않았다.
실기 곡을 받아 든 날부터 집에서 주구장창 연습을 했다. 곡 제목은 '님이 오시는지'였다. 밤낮으로 '물망초'로 시작해 물망초가 다 시들 때까지 '님이 오시는가'를 불렀다. 연습에 몰입하다 보니, 조수미까진 못가도 성악가에 버금갈 법한 소리가 났다. 녹음을 해서 들어보았는데, 님이 정말 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여러 번의 녹음과 수정을 거치며 만반의 연습을 했다. 드디어 실기 시험날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반주하시는 피아노 옆으로 갔는데, 갑자기 내 손과 내 발이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고장 난 구체관절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근육의 움직임이 굳어져 버렸다. 선생님의 전주가 끝나고 노래를 시작해야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나는 부르고 있는데, 목구멍에서 소리가 막혀 목소리가 새어 나오질 않았다. 선생님이 괜찮냐며 다시 하자고 하신다. 그때부터 난 굳어진 근육과 막힌 목소리에 우스꽝스러운 바이브레이션까지 갖게 되었다. 모두가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고, 나의 떨리는 손가락과 후들거리는 다리만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내 목소리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날 쳐다보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표정이 신경 쓰여 도저히 노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모기만 한 소리로 떨며 부른 실기 시험에서, 님은 결국 오지 못했고, 음악은 유일하게 '수'를 사수하지 못한 과목이 되었다.
집에서 혼자 노래할 땐, 성악가라도 된 것처럼 잘 부를 수 있었는데, 남들 앞에만 서면 내 목소리는 방음벽에 부딪힌 소리처럼 들리질 않았다. 방음벽은 다름 아닌 내가 세워 놓은 것이었다. 내 소리가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방음벽은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남'을 너무 의식한, 내가 세워 놓은 것이었다.
남들의 평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에 난 '솔'로를 영 망치고 있었다.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노래를 망치고 말았다. 사실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더 관심 있고, 더 바쁘다. 나는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은 존재일 뿐인데, 마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만 쏠린 것처럼 착각을 했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솔'로 파트를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남이 아닌,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무언가 대단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혹은 적어도 남들 눈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남의 평가와 시선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위 그 자체, 그 일에 순수히 몰두해야 했다.
못해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고, 어설퍼도 괜찮다. 내가 나의 솔로 파트에 떳떳할 만큼의 노력을 했다면 충분하다. 남의 인정을 바라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정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하면 된 것이다. 설령 남들에게 멋진 무대가 되지 못해 그들의 박수를 받을 순 없어도, 적어도 내가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 말고, 나에게 떳떳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솔'로의 멋진 무대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솔로 파트를 위해 그들의 소리를 죽이고 귀 기울여 주는 기회는 항상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당당히, 자신 있게, 온전히 떳떳한 마음으로 나를 펼쳐 보일 솔로 파트를 힘차게 부르면 된다.
'솔'소리를 내야 할 차례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솔로 파트에 기울인 노력만큼 떳떳하게 불러보려 한다.
'솔~~~'
목소리가 탁 트인다.
'솔~~~'
나의 '솔'소리로 '솔'로 무대가 채워지고 있다.
음치 교정 '솔' 카드--나에게 집중하며 노래하는 '솔'로 카드
<그림: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