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착'시'

by 나무향기

내 눈은 도다리 눈이 아닌데, 어떨 땐 나의 눈이 심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았다. 두 눈이 오른쪽으로 쏠린 도다리처럼 나는 초점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음표를 제대로 보지 못해 '시'를 불러야 할 곳에 다름 음을 부르기가 일쑤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악보를 다시 보라고 일러주었지만, 한쪽으로 쏠린 눈으로는 도저히 악보의 음표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눈은 좌우 양쪽에 하나씩 균형 잡히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무언가를 보려고 하면 자꾸 한쪽으로만 쏠렸다. 내 머릿속은 이미 자리 잡은 고정관념들과 섣부른 판단과 얄팍한 경험치들이 혼합이 되어 나의 시선을 자꾸 한쪽으로만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런 '시'선은 착'시'를 일으켰다.


분명히 오선지 위에서 턱에 받침대 하나를 고으고 있는 음표라야 '시'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내 눈엔 자꾸 그 받침대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라'가 되거나 '도'가 되곤 했다. '시'는 자기 모습 그대로 가만히 있었지만, 나의 뇌는 자꾸만 그 '시'를 '라'나 '도'로 착각했다.


음치 교정 선생님은 눈에 물리적인 이상은 없는데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뇌’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착'시'를 일으키는 뇌를 깨끗이 정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의 뇌에 덕지덕지 붙은 온갖 고정관념과 상념들을 걷어내고 악보를 바라보라고 하셨다.

이번엔 음을 소리 내는 것보다 음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나의 '시'선이 필요했다.


음치 교정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나는 누군가를 쉽게 쏠린 눈으로 판단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자동 반사적으로 누군가의 겉모습과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뇌에서 갑작스러운 통계적 판단이 일어날 때가 많아 브레이크를 밟아줘야 한다. 지금은 브레이크라도 장착되어 제어를 할 수 있지만, 브레이크가 없던 시절, 나는 내 마음대로 판단의 악세레다를 밟곤 했다.


호주에 살면서 안동 출신인 내가 힘들었던 건 여자들이 너무 훌렁훌렁 벗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바닷가 동네라지만 쇼핑센터 안에서조차 비키니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젊은 여자들을 볼 때면 내가 다 민망해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리고 속으로 '옷을 차라리 벗고 다니지 그랬니?' 하며 혀를 끌끌 찼다. 아무래도 보수의 극치인 곳에서 자란 탓인지 난 몸단장에서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미니스커트나 앙가슴이 보이도록 목이 깊게 파인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단정치 못한 사람'으로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호주에서 만난 몇 안 되는 한국 친구 중에 정임이는 옷차림이 자유분방한 친구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 이후에 만났을 때도 매번 무릎이 훤히 드러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모임에 나타났다. 나의 뇌에서 정임이는 이미 '단정치 못한 친구'로 낙인이 찍혔고, 그래서인지 정임이에게 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정임이가 한 발 먼저 다가와도 난 데면데면하기만 했다. 나의 반응이 그렇거나 말거나 정임이는 늘 밝게 웃는 친구였고, 늘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다.


그렇게 난 정임이를 친구 목록의 어느 변두리쯤에 넣어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둘째 출산 후 나에게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다. 정작 날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친구들은 '복에 겨워 그런 병에 걸리는 거니까 정신차리라고' 감당할 수 없는 말들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았던 정임이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나에게로 달려왔다. 집안 일도 도와주었고, 따뜻한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고, 집으로 식사 초대도 해주었다. 그런 정임이의 호의를 받는 것이 죄스러웠다. 마음속으로 정임이를 도다리 눈을 하고 바라본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옷차림 하나로 그 사람을 쉽게도 판단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단정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던 그 친구는 실은 마음이 '단정한'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는 똑같은 길이의 선을, 끝에 붙은 화살표 방향에 따라 길이가 다르다고 우겨대는 사람이었다. 뇌가 착'시'를 일으킨 줄도 모르고 나의 '시'선을 너무 맹신하고 있었다. 내가 다 알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하지 못하고 나의 어설픈 경험과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너무 쉽게 무언가를 판단하고 있었다.


도다리 같은 눈을 한 나의 눈을 제자리에 두고, 덕지덕지 붙어 있던 고정관념의 때를 뇌에서 벗겨낼 필요가 있었다. 섣부른 판단이 내 머리에서 생성될 때마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아주어야 했다.


"잠깐, 내가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잖아. 저 사람의 저런 행동과 모습에는 내가 모르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섣불리 판단하려 들지 말자."


착시로 인해 쉽게도 '악함'이라 판단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그 사람의 '약함'으로 드러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사람은 어쩜, 어떻게, 그렇게 나쁠 수 있지?"라고 했던 말은

"그 사람은 정말, 그 정도로, 그렇게나 약한 사람이었구나."로 바뀌곤 했다.


'약함'을 '악함'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눈으로 본 것이 어쩌면 '착시'일지도 모른다는 겸손함이 필요했다.


뇌에 묻은 땟국물을 벗겨내고, 제멋대로 질주하려는 뇌에 브레이크를 달아주었더니 그제야 '시'가 '시'로 보였다. 도다리 눈에서 벗어나 악보를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시'를 다시 불러보았다.

"시~~~"


시냇물처럼 맑은 '시' 소리가 난다. '라'도 아니고, '도'도 아닌 정확한 '시'음이 졸졸 흐르기 시작한다.

"시~~~"

시원한 시냇물 같은 '시'음이 좋다.


음치 튜닝 '시'카드 -- 조심해! 착'시'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