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짜꿍과 곤지곤지, 죔죔, 도리도리. 부모가 되어 아기가 커 가면서 이런 동작들을 하나씩 배워가고 처음으로 해냈을 때, 난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었다. 나 역시 아기였을 때, 엄마, 아빠가 알려준 이 동작들을 열심히 따라 했을 것인데, 난 이 중에서 도리도리를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도리도리를 너무 열심히 하다 머리가 띵 해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중에 커서야 아기들이 하는 이 네 가지 동작이 모두 아기의 건강을 위해 고안된, 조상들의 혜안이 돋보이는, 아기를 위한 놀이이자 건강 운동(?)의 일종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난 꼭 그렇게만 생각되진 않았다.
짝짜꿍은 공감과 수긍의 감정을 표현할 때, 곤지곤지는 무언가 곤란한, 난감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때, 죔죔은 화가 났을 때 손을 쥐락펴락하며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그리고 도리도리는 결코 수긍할 수 없는 강한 부정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이진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아기들의 건강을 위해 지혜로운 조상들이 고안해낸 놀이겠지만, 난 그것이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사람의 감정 표현을 지혜로운 조상들이 아기 놀이로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도'리도리는 어려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었지만, 커갈수록 도리도리가 힘들어졌다. 도리도리를 하는 게 도무지 인간의 '도리(道理)' 아닌 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에, 난 거절을 잘 하지 못했고, '아니'라고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렇게 도리도리 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었을 때, 나에게 세 번째 '도'가 주어졌다.
두 옥타브 올라간 '도'는 낮은 '도'도 아니고, 한 옥타브 올라간 높은 '도'도 아니었다. 나머지 두 '도'와는 음이 같긴 하지만, 높이가 달라 같은 '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야 했다. 사람들은 그냥 다 똑같은 '도'일뿐이라고 하며 나의 세 번째 '도'를 우습게 보았지만, 나의 세 번째 '도'는 이제껏 내가 소리 낸 '도' 중에서도 가장 높은 '도'였고, 가장 힘든 '도'였다. 일반 사람들의 보통의 음역대가 두 옥타브 반이라고 하니, 두 옥타브 '도'는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낼 수 있는 '도'인 셈이었다. 사람들이 그 '도'를 다른 나머지 '도'들과 같은 것이라 치부해 버릴 때 나는 '아니'라고 말할 도리도리가 필요했다.
내가 도리도리 하는 법을 잊게 된 건, 사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감히 '아니'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듣게 될 험한 말들과 싸늘한 눈빛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남 눈치를 보는 법도 몰랐을 땐 마음껏 도리도리질을 했지만, 난 어느샌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굳이 몰라도 될 무언가를 알게 되어 도리도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홍길동도 아니면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엔 내가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나의 도리도리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받게 될 상처도 걱정되었다. 분명히 내 눈에 '아닌' 것으로 비쳤어도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까 봐 그들을 지나치게 배려해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되었다. 홍길동이 자신이 분명 아버지의 아들이자, 형의 동생이면서도 아버지와 형을 자신보다 너무 배려했기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난 나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남을 배려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답시고 '아니'라고 말하기를 주저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었다.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어야 나도, 듣는 사람도 혼돈이 없었을 텐데, 난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해 나중에 상황이 더 꼬여가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을 받았을 때도 '아니'라고 말했어야 그들의 기대감이 없었을 텐데, 두리뭉실하게 긍정의 대답을 해 놓고, 결국 그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을 때, 상대는 오히려 더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중2 시절, 우리 반엔 전교생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 인기 못지않은 여자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권 미녀. 이름과 달리 그 아이는 잘 생긴 꽃미남 남자아이처럼 생겼고, 그래서 여중에서 아이들에게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만 할 줄 알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나를 '귀엽게' 보았다. 늘 지나가면 내 머리를 한 번씩 쓰담쓰담해 주었다. 사실 미녀는 일진이었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먹고, 싸움도 잘하는 거칠고 예쁜 남자 같은 아이였다. 그녀와 같은 반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미녀의 '아닌' 행동들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묵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학년 전체가 야영을 가게 되었다. 으슥해진 밤을 틈타 미녀가 텐트에 달그락 거리는 술병을 들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미녀가 하는 그런 행동도 아름답게만 보았고, 술을 몰래 마실 용기마저 우상화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냥 잠든 척 가만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미녀가 굳이 누워있는 날 건드리며 날 깨웠다.
"야, 일어나 봐, 술 한잔 같이 하자, 야!"
모른 척, 잠자는 척할 수도 있었지만, 난 그때 이불을 젖히고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긴 일어났지만 실실 쪼개며 웃음을 웃는 미녀와 그녀의 조무래기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을 때, 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미녀가 술을 따라 내게 건네었다.
술을 받아 들 것인가 말 것인가. 모두가 동경하는 미녀의 술잔을 지금 거절해 버린다면, 나는 미녀 군단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박해를 받을 텐데... 그리고 내가 거절하면 미녀도 애들 앞에서 얼마나 머쓱하고 난처할까... 오만 걱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난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도리도리질을 하고 있었다.
"(모기 소리로) 야... 우리가 술 마시기엔 너무 아직 어리잖아... 나 못 마셔... 그리고 너희도 이렇게 텐트에서 선생님 몰래 마시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도리도리질을 하는 말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얼마 후 미녀는 거절당한 술잔을 나에게가 아니라, 텐트 밖으로 던지며 말했다.
"범생이가 무서운 줄 모르고 이 언니한테 한 마디 하시네. 야. 쟤 정말 귀엽지 않냐?"
놀랍게도 미녀는 술맛이 떨어졌다며 술병을 다 갖다 버렸다.
그 일 이후 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도 세상이 꼭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나니 무엇인가 내 안에서 단단해진 부분이 생겨난 것 같았다.
물론 아니라고 말해서 무참히 깨진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타인을 위한 배려이자, 나를 위한 배려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진정한 '도리(道理)'였던 것이다.
사실 겉으로는 마음과 달리 "예, 예."라고 할 때도 있었지만 원초적인 나의 본능은 내 고개가 무의식 중에 도리도리를 하게 만들어 멈칫 놀랄 때도 있었다. 어릴 때, 엄마 아빠의 '도리도리' 소리에 맞추어했던 도리도리질이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나올 때가 가끔 있었다. 어쩌면 나의 이성보다는, 내 몸의 반응이 더 솔직하고 빠르게 나타났던 것 같다.
모두가 '예'라고 말하고 있어도, 난 분명히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사람들의 조용한 묵인과, 암묵적인 결탁에도 난 도리도리질을 과감하게 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어릴 때 배운 도리도리의 '도리'였다. '좋은 게 좋다'는 두리뭉실한 책략에도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도리도리질을 해야 했다.
그렇게 잊었던 나의 도리도리를 되찾고 나니, 두 번째 옥타브의 '도'가 목에서 막힘 없이 머리를 타고 쏟아져 나왔다. 어릴 때처럼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두 번째 옥타브의 '도'를 두성으로 쏘아 올렸다.
높고도 높은 '도' 소리에 머리가 상쾌해진다.
비겁하게 움츠러든 '도'가 아니라, 가슴이 탁 트이는 맑은 '도' 소리다.
'도~~~'
어쩌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다. ‘도’가 '도'동실 하늘 위를 날아오른다.
음치 튜닝 '도'카드-- 도리도리 할 수 있는 '도'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