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지 않다. 미니멀하다.

by 나무향기


오랜만에 한국 나가 목욕탕에 가서 오랫동안 묵혀 둔 때를 벗길 때 느끼는 그 쾌감은 한국서 매일 목욕탕 다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평상시 잘 안 씻는 꼬질이는 아니다. 샤워도 자주 하고 머리도 자주 감지만, 호주에선 알다시피 공중목욕탕이 없다. 욕조에 물 받고 몸 불려 때를 밀면 되겠지만, 한국에서의 그 ‘맛’이 안 난다. 그래서 한국에 나가면 공중목욕탕 들르기가 나의 첫 번째 코스이다.

지금 난 미니멀리즘에 푹 빠졌다. 묵은 때를 벗기듯 내 삶에 없어도 될 물건들을 정리하며 덜어내는 즐거움은 한국의 공중목욕탕에서 느꼈던 쾌감과 맞먹는다. 무서운 기세로 이 방, 저 방 다니며 정리하니 남편은 자기마저 팔아 치울까 걱정이 된다고 농담을 한다. 계속 정리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팔건 팔아 보니, 이제 내일 당장 짐 싸들고 한국으로 간다 해도 될 만큼 단출해졌다.

그런데 하다 보니, 물건만 줄이는 미니멀리즘 말고, 내 밥상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살림에 늘 부지런한 엄마에게서 보고 배운 탓인지 일주일에 한 번은 밑반찬 하는 날로 정하고 장금이가 된 것처럼 반찬을 만들어 두었다. 김치도 종류 별로 쪽파 김치, 깻잎 김치, 배추김치, 물김치, 무말랭이 김치 등등 구색을 다 갖추어 놓았다. ‘스페인 하숙집’을 보며 배운 동그랑땡, 멸치 볶음, 감자채 볶음, 장조림도 유리 반찬 통에 담아 놓으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첨엔 그랬다. 부자가 된 느낌.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식구들은 이 모든 반찬을 한꺼번에 먹기가 버겁다는 걸 느꼈다. 맛있는 김치 하나에 계란 프라이만 있어도 한 끼로 충분하다. 그런데 김치 종류가 너무 많다 보니 냉장고에서 꺼낼 때부터 우왕좌왕한다. 나는 어디 뒤쳐지는 김치라도 있을까 싶어 왜 이거 안 먹냐고 식구들을 보챘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과 방금 한 따끈한 음식과는 현저히 차이가 났다. 내가 지금 먹고 싶어서 만든 따뜻한 김치찌개는 냉장고에서 꺼내 온 멸치 볶음과 장조림을 멀리하게 했다. 비 오는 날 방금 부쳐 내 온 배추전은 내가 냉동해 두었던 동그랑땡들을 소외시켰다.

‘혹시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냉장고 속 밑반찬들은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밥상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했던 것이다. 매 끼마다 임금님 밥상처럼 첩첩 반상을 차릴 필요가 없었다. 맛있는 거 딱 하나, 한 그릇 음식이면 충분했다. 먹고 싶은 밑반찬이 떠오르면 그때 먹을 만큼만 만들어 먹기로 했다. 밥상에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니 설거지거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내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여유롭다.

이쯤 되니, 어디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구석이 더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난 뭐, 친구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 망이 넓지는 못한 사람이라 정리할 사람도 별로 없다. 이미 카톡 목록도 정말 친한 친구와 가족 외엔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 인생엔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호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갈등하며 내 인생을 낭비한 건 아닌지…

시험 칠 때 객관식이 주어진다면, 4지선다보다는 5지선다가 더 어렵다. 보기가 많은 것이 더 어렵다. 문제를 맞히냐 못 맞히냐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얼마나 갈등하느냐의 문제이다. 차라리 시험이 주관식이라면 내가 아는 만큼만 써내려 가면 된다. 하지만 객관식의 보기가 많을수록 내 갈등은 깊어만 간다. 이것인 것도 같고, 저것인 것도 같고, 3번으로 하려니 5번일 것도 같고 말이다.

내 인생에선 1번만 보기로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아니, 아예 보기가 없는 주관식이 되려 편할 것 같다.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이 결코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한 남자아이는 놀랄 만큼 뛰어난 재능과 학습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못하는 게 없었다. 아직 중학생인데 그림을 그리면 200만 원에 팔려 나갈 정도의 그림 실력이다. 운동을 하면 학교 대표가 아니라 주 대표로 경기에 나간다. 시험을 치면 늘 올 A이다. 이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너무 궁금해서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도 그렇게 잘하고, 공부까지 잘하는데 뭐가 될 생각이야?”

돌아오는 답은 충격적이었다.

“되고 싶은 건 없고요, 돈 많이 버는 직장에나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는 할 수 있는 게 많은 아이였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하나’가 없었다.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온 날은 다녀와서도 대체 내가 뭘 먹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다 맛있기는 했는데, 내 기억에 쏙 박힐 만한 하나가 없다. 이것저것 먹어서 배는 부른데, 만족감은 별로 없다.

불안한 마음에 따놓은 자격증들은 인생을 결코 풍요롭게 할 수 없다. 더 넓은 선택지를 위해 쌓아 올린 스펙은 내 삶을 더 방황하게 할 것이다. 뷔페 같은 인생 말고, 외골수 같은 단출한 인생이 더 의미 있다.


어릴 적 물에 말아 멸치 고추장 찍어 먹으면 맛있다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내 인생에 밥 말아먹을 물 한 공기와 고추장 찍을 멸치만 있어도 맛난 인생이 될 수 있다. 다채로운 인생 말고, 미니멀한 인생도 멋진 인생이다. 내 인생에 의미 있는 하나만 있다면 우린 한끗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

인생이 초라해 보이는가?

초라하지 않다.

미니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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