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헛헛할 땐 케이크를 굽는다. 마음 가는 대로 만드는 나만의 케이크이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계란 2-3개를 풀고, MCT 오일 한 컵과 정제되지 않은 유기농 설탕 2/3컵을 섞는다. 여기에 카무트 가루(kamut flour)와 오트 브랜, 아몬드 밀을 한 컵씩 넣는다. 호두도 갈아 반 컵을 넣고, 호박씨도 넣어준다. 약간의 소금과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잘 뒤적이듯 반죽을 한다. 반죽이 너무 되직하면 오트 우유도 살짝 넣어준다. 이렇게 완성된 반죽을 틀에 부어 건포도를 위에 흩뿌려 주면 끝이다. 오븐에 잘 구워지기만 기다리면 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달하고 폭신한 케이크는 아니지만, 건강한 맛이 나는 케이크이다. 맛처럼 건강에도 좋으리라 믿어본다.
내가 직접 구운 케이크를 나누는 일은 나를 치유하는 좋은 방법이다. 케이크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구웠다는 그 정성만으로도 받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마음이 치유된다.
오늘은 코로나로 엄마를 잃은 마누아(Manua)를 위해 케이크를 구워보았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밥 한 끼 정성스레 차려 주고, 케이크를 구워 주는 일뿐이지만, 이런 일들은 그녀를 위로한다기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마누아는 엄마를 잃었지만 나 역시 그녀의 엄마인, 소중한 내 친구를 잃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조이(Joy)에게 케이크를 구워주듯 마누아를 위해 케이크를 구웠다.
조이는 내 소중한 친구이다. 30년에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친구였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내가 가면 따뜻이 안아주고 내가 떠날 때면 나를 사랑한다며 내 볼에 입맞춤을 해주는 엄마 같은 친구였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점심을 먹던 조이는 갑자기 급체를 했다. 조이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음식을 다 토해내고, 그래도 가슴이 답답하다며 못 견뎌했다. 그때 난 어렸을 때 엄마가 해 주셨듯, 조이의 혈 자리 곳곳을 지압하고 등을 눌러 가장 아파하는 곳을 계속 눌러주었다. 신기하게도 걸렸던 뭔가가 내려가고 조이도 안정을 찾았다.
조이와 그녀의 딸 마누아는 무척이나 고마워하고 신기해했다. 나보고 간호사였냐고 물어본다. 한국에서는 급체할 때 이런 식으로 체를 내린다고 해 주었더니 마치 허준을 만난 듯 놀라워라 한다. 내가 토한 오물도 마다치 않고 주무르고 눌러준 것을 내내 고마워했다. 그 이후 우리는 마음을 터 놓는 친구가 되었다.
조이는 내가 갈 때마다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 단점까지 장점으로 바꾸어주는 놀라운 힘을 가진 사람이 조이였다. 내가 수줍음이 많아 말을 잘 못해서 이런 내가 부끄럽다고 하자 조이는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었다.
“니가 수줍음이 많아 말을 잘 못하는 게 아니야. 잘 살피고 말할 때를 찾느라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거지.”
조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 조이 덕분에 말주변이 없는 내가, 말할 때를 잘 살피는 신중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조이는 그녀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신기한 기술(art)을 가졌었다.
그런 조이가 코로나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내가 기대던 큰 나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조이는 우리가 큰 슬픔에 잠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를 기억하며 웃음 짓기를 바랐다.
그녀를 떠올리면 늘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의 웃음이 내 마음 가득 떠오른다. 조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를 얻게 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조이처럼 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친구란 이런 사람인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내 옆을 지켜주고, 내 삶을 환한 웃음으로 밝혀주는 그런 사람이다.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용기를 주고, 보고 있지 않아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다.
잘 구워진 케이크 냄새가 거실에까지 가득하다. 따뜻하게 구워진 케이크를 보며 내게 따뜻한 기억들을 선물해 준 조이를 추억한다. 케이크를 먹으며 웃고 있는 조이를 보는 듯하다.
조이의 품이 그립고 그녀의 살가운 입맞춤이 그립다.
그래도 많이 슬퍼하지는 않겠다.
언제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우리에게 주어질 테니 말이다.
사진: 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