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

by 나무향기


난 좀 별나다. 까칠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하기 싫은 건 억지로 못하는 성격이다. 좀 맞춰주고, 빈 말도 해가며 둥글둥글하게 살아갔으면 내 삶이 더 순탄스러웠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난 늘 둥글둥글한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부러웠지만, 실상 내 자신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어렸을 때도 그랬다. 어릴 때도 어른들한테 입바른 소리 하다가 엄마가 난처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왜 뻔히 보이는 그 말들을 안 하고 빙빙 두르고, 못 번 척 넘기는지, 어린 나의 눈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큰 이모에겐 외동아들이 있다. 나에겐 이종 사촌 오빠이고 나보다 나이가 15살은 많다. 내가 열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니 오빠가 20대 초반이었을 무렵이다. 큰 이모는 매일 같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오빠가 속을 썩여 힘들다고 하소연하셨고 내 눈에 사촌오빠는 엄마 속 썩이고, 돈을 탕진하는 부랑자처럼 보였다. 불효자도 저런 불효자가 없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 나는 외가댁에 가서 사촌오빠를 만나게 되었는데 사촌오빠는 자기가 입은 메이커 브랜드의 옷을 식구들에게 자랑했다. “이 정도는 입어줘야 사람이 뽀대가 난다.”며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기가 찼다. 어린아이도 기가 찰 노릇인데, 어른들은 다들 “그래그래, 옷 참 보기 좋다.”며 오빠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난 이 부조리해 보이는 순간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한 마디를 뱉고 말았다.

“옷만 좋은 거 입으면 뭐해요, 사람이 좋은 사람이어야지.”

엄마와 아빠는 뜨악해하시고, 이모와 이모부는 당황해하셨다. 조그만 어린애 입에서 나오는 입바른 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하시니, 화가 나신 듯했다. 안 그래도 아들 때문에 속상한데 그게 꼬맹이의 입으로 그대로 튀어나와 낱낱이 드러나니, 화가 나실 만도 했겠다. 이모는 엄마에게 애가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냐며 분해하셨다. 그날 난 엄마에게 알 수도 없는 매를 맞고 다시는 어른들 앞에서 그런 소리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다.

매를 맞고, 야단을 맞아도 나는 왜 내가 잘못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인 걸 뭐.’하며 이불 덮어쓰고 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렇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까칠한 사람이다. 그래서 남편은 내게 왜 그 한마디를 못 참냐고 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데 그 직언이란 걸 꼭 해 주고 싶다. 그 사람이 모를까 봐서가 아니라, 모른 척하는 게 싫어서다.

이런 까칠함은 내 인간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기 보다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인간들을 못 참아했다. 그래서인지 난 친구가 많지 않다. 친구도 미니멀하다. 서글서글한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직언하는 습성은 또 다른 면으로는 좋은 영향도 끼친 것 같다. 좋은 것을 보거나 칭찬할 만한 것들을 보면 난 꼭 그 말을 해주고야 만다. 속으로 “잘했네.. 대단하다.”라고 삼키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 사람의 좋은 가치를 알려주고, 확인시켜주었다. 그래서 그나마 보물 같은 친구들이 내게 주어진지도 모를 일이다.

커피는 향이 너무나 좋다. 어렸을 때 엄마가 찬장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손님 오시면 꺼내 놓으시는 커피 잔들은 내 어린 마음에 커피의 신비함을 심어주었다. 손님이 마시는 커피 향은 너무나 근사해서 내내 옆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코로 향을 주어 담았던 기억이 난다. 그 그윽한 커피 향의 신비를 깨트린 건, 내가 처음 커피를 마셔보았을 때이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가 절대 봉인 해제해주지 않으셨던 커피를 처음으로 마셔보게 되었다. 그윽한 향을 가득 담아 커피를 마셨는데, 이게 뭔가. 너무 쓰다.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향과는 너무 다른 쓰디쓴 맛. 그 이후로 커피는 다시 마시고 싶지 않았다. 여러 번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커피는 매번 내게 쓴 맛만 남겨주었다. 밤에는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커피를 마신 날은 손가락이 떨리기도 했다. 이런 커피를 난 마실 수가 없다.

커피를 못 마셔서 참 불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꿋꿋이 마시지 않았다. 커피숍에서 친구들이 커피 마실 때 난 빨대로 물을 들이켠다.

난 커피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못한다. 겉으로 그윽한 향을 풍겨 나를 들뜨게 하고선 실제로 맛을 보면 쓰디쓴 그런 사람 말이다. 까칠한 내 성격이 그를 품지 못한다. 그래서 난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내 온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을 피하는 게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난 차라리 맹물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편이 편하다. 향을 즐기진 못해도 배신당할 염려는 없으니 말이다.

남편이 살면서 나에게 힘들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내가 술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맘이 좋지 않거나, 맘이 좋은 날에는 부부가 술 한 잔 기울이면 참 좋은데, 난 그러질 못한다. 술은 내게 너무 쓰다. 아직 술맛을 모른다. 술을 마셔보려고 소주 한 병까지 먹어 보았다. 정신도 말짱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너무 쓰다. 써서 못 마신다. 억지로 분위기 맞추려고 마시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억지로를 못한다. 분위기는 꼭 술을 마셔야 맞출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마음으로 맞추면 되지 않는가? 내 입에 너무 써서 오만상 찌푸려지는 술을 분위기 맞추자고 억지로 들이킬 순 없었다.

주변 사람 비위 맞추는 걸 난 정말 잘 못한다. 억지로를 잘 못한다. 내 맘에 있는 말이 아니면 억지로 나오지가 않는다. 그래서 난 눈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때가 많았다. 맘에 없는 칭찬은 나오지가 않는다. 내가 보이기엔 영 아닌데 잘했다는 소리가 안 나온다. 어떻게든 칭찬을 해 보려고 끄나풀을 찾아보는 것도 싫다. 그냥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내 마음에 느낀 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내 마음은 오만상을 쓰고 있는데 분위기 맞추자고 억지웃음 지으며 비위 맞추는 건 정말 난 못한다.

내가 이런 모난 사람이다. 둥글둥글하질 못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입에서 칭찬이 나오면 그건 정말 순도 백프로이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순도 백프로의 내 칭찬을 믿어줄 것이다. 가치 있게 여길 것이다.


내가 커피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그저 내가 별나고 까칠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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