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거품 주의!
추운 계절이 된 호주는 게가 제철이다. 친절하게도 게 철이 되면 새우잡이 배 선장님이 문자를 주신다. 오랜만에 생게를 살 수 있는 기회다. 새우잡이 배는 새우를 잡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렇게 간혹 게나 갑오징어, 문어가 잡히기도 한다. 남편이 언제부터 간장게장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선장님이 주신 문자에 새벽같이 달려가 게를 사 왔다.
한국과는 달리 호주는 암게는 법적으로 잡을 수 없고 먹을 수 있는 게는 숫게 뿐이다. 알을 품은 암게에 죄책감을 갖진 않아도 된다. 잡아먹는 거야 마찬가지긴 하지만 양심의 가책이 확실히 덜하긴 하다. 여하튼, 숫게 여러 마리를 사들고 와 간장게장을 담아 본다.
친절하신 요리 블로거님들의 레시피를 종합해 간장게장을 담는다. 시간이 참 오래도 걸린다. 하루 지나면 간장을 다시 따라내어 끓여주고, 또 하루 지나면 다시 따라내어 끓여주기를 반복해야 한다. 간장을 끓여내 식히고 부을 때마다 간장 찌꺼기를 거른다. 역시 거품은 게거품이 인가. 찌꺼기를 뜰채로 제때 건져내지 않으면 끓던 간장은 찌꺼기와 함께 거품을 물고 넘쳐버린다. 잠깐 한눈 판 사이 넘친 간장과 찌꺼기가 게거품이 되어 가스레인지 위에는 홍수가 났다. 제때 건져내지 못한 찌꺼기는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넘친 찌꺼기를 보니 왠지 나를 보는 것 같다. 부유하다 결국 끓어 넘쳐 쏟아져 버린 찌꺼기들처럼, 제때 거르지 못한 찌꺼기들이, 내 안의 온갖 찌꺼기들이 폭발해 버릴 때가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 찌꺼기, 억누르고만 있던 슬픈 감정들, 인정받지 못한 매일의 고된 수고, 그런 찌꺼기들은 내 마음을 부유하다 슬슬 끓어오르면 난장판 파티를 하며 폭발하고 만다.
가끔 내가 이리도 다혈질인가 싶다. 남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집에선 온갖 찌꺼기를 거품 물고 퍼부으면 어느 남태평양 평온한 모래사장에 나타나 게거품 문 샌드크랩이 된 것 같다. 그때 남편이 정신 차리라고 파도 같은 한 마디를 철썩 날려준다. 게거품 물다 파도에 철썩 부딪히면 그제야 게거품을 삼키고 모래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게'가 된 것 같다. '개'까진 안 가고 '게'까지만 가 다행인가도 싶다.
간장 게장의 게거품만 뜰채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내 마음에도 뜰채가 필요했다. 정성껏, 부유하는 찌꺼기를 건져주었어야 했는데 뜰채 없이 마음속을 휘젓고 다닌 찌꺼기들은 결국 게거품 물고 폭발해 버리고 만다.
못내 용서하지 못한 마음의 찌꺼기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끓어올라 게거품을 물게 했다. 면전에 놓고 게거품을 물진 않을지언정, 집으로 돌아오면 내 입은 게거품이 흥건했다. 아직 마음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음은 내 입에 붙은 거품들이 증명해 주었다. 우아하게 카푸치노라도 마시고 커피 거품이라도 묻히고 오면 좋을 것을 난 늘 게거품만 물고 있었다. 뜰채가 필요했다. 좀 더 촘촘해 찌꺼기를 말끔히 걸러줄 뜰채가 필요했다. 더 이상 입 주위에 지저분한 게거품은 물지 않으리라는 다짐만으로는 부족했다. 온전한 용서라는 뜰채만이 추접스런 게거품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용서하지 못한 감정이 남을 향한 나의 마음속 찌꺼기라면 인정받지 못한 슬픔과 외면받은 수고는 나를 향한 마음의 찌꺼기다. 이 찌꺼기들은 부채처럼 늘어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율이 낮다고 얕잡아 보면 안 된다. 이 놈들은 복리로 부는 경향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부채가 산더미가 될 수 있다. 화산이 되어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냥 참자, 참아.'는 점점 뒤로 물러나다 결국 한 방을 날리는 새총과 같았다. 뒤로 물러서면 설수록 큰 한 방으로 나를, 누군가를 타격하는 무서운 것들이었다. 이 아이들 역시 찌꺼기가 남지 않게 뜰채로 잘 걷어주어야 했다. 잘 건져 다독이고 인정하고 바로 바라봐 주어야 했다. 온전한 인정이라는 뜰채만이 마그마를 진정시켜 주었다.
마음에 찌꺼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몸 안엔 분뇨를 품고 살듯, 마음속에도 여러 가지 찌꺼기들이 떠다닌다. 다만 제때 배설해야 하는 분뇨처럼, 제때 뜰채로 걸러주고 보살피지 않으면 간장게장 게거품처럼 폭발해 버릴 것이다. 부엌 가스레인지가 온종일 꼬리꼬리한 냄새로, 엉겨 붙은 간장 찌꺼기로 뒤덮이지 않으려면 뜰채를 부지런히 놀려야 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뜰채로 부지런히 찌꺼기를 걸러줘야 했다.
간장 게장을 담으며 '게'와 난 많이도 닮았단 생각이 든다. 샌드크랩이라고 매번 게거품을 물고 싶진 않다. 알고 보면 게는 정말 소심한 생물이다. 얼마나 소심하면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옆으로만 가겠는가? 얼마나 부끄럼이 많으면 시도 때도 없이 모래 속으로 숨어 버리겠는가?
소심한 게가 갑자기 게거품 물지 않도록 뜰채를 잘 사용해야겠다.